[나는 역사다] 허먼 홀러리스 (1860~1929)
인구 조사는 큰 사업이다. 땅도 넓고 사람도 많은 미국 같은 나라는 특히 그렇다. 인구 조사 데이터를 집계하는 것은 더욱 큰일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옮기고 셈해야 했다.
1890년 인구 조사 때 독일계 통계학자인 허먼 홀러리스가 천공카드를 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종이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바늘이 들어가 종이 아래의 수은을 건드려 전기가 통하는 기계로, 작은 구멍이 여럿 뚫려 천공카드라고도 한다. 20개씩 12줄로 모두 240개 구멍이 뚫려 있던 기계 덕분에 정보 처리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었다.
미국 말고 다른 나라도 인구 통계에 홀러리스의 기계를 쓰고 싶어 했다. 천공카드는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었다. 고객 은행계좌 정보나 보험 정보, 열차 운행시간표, 엄청나게 큰 기계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계산 따위를 처리하기 좋았다. 초창기 컴퓨터도 천공카드를 썼다. 1960~70년대 종이카드에 구멍을 뚫어 프로그래밍을 했다. 홀러리스는 천공카드 회사를 세웠다. 천공카드를 읽고 계산하는 기계보다, 구멍 뚫을 종이카드를 팔아 더 큰 수익을 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훗날 천공카드보다 간편한 정보저장 장치가 발명되었다. 공간을 차지하고 속도도 느린 종이카드는, 자성을 띤 테이프며, 플로피디스크와 하드디스크 따위에 자리를 내줬다. 오늘날에는 오르골이나 자동연주 피아노 같은 기계에만 사용된다.
그래도 천공카드와 홀러리스의 유산은 크다. 홀러리스의 발명을 정보화 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우리가 익숙한 오엠알(OMR)카드와 로또 용지도 천공 카드의 유산이다. 작은 구멍 대신 검은 칠을 기계가 인식하는 방식이다.
홀러리스는 1929년 11월17일 세상을 떠났다. 홀러리스의 회사는 인수합병을 거듭하다 훗날 ‘국제사무기계 회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머신, 즉 아이비엠(IBM)이다. 아이비엠은 사무기계를 만들어 팔다가 1952년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는 컴퓨터도 홀러리스의 천공카드를 이용했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