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빈대믹’(빈대+팬데믹)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유럽·미국 등에 이어 한국에서도 빈대가 기승을 부리면서 세계적인 유행을 뜻하는 팬데믹에 빗댄 ‘빈대믹’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지난 10일 기준 ‘구글 트렌드’를 보면, 최근 7일간 ‘빈대’가 검색량 순위 1위에 올랐을 정도다.
빈대는 침구·옷·가구 등에 붙어 있다가 피를 빠는 흡혈 곤충이다. 20도 이상 실내에선 먹이 없이도 120일가량 생존한다고 한다. 감염병을 옮기진 않지만, 가려움증과 2차 피부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 웬만한 살충제엔 내성이 있어 한번 창궐하면 박멸하기도 어렵다.
가난·불결의 상징이던 빈대는 과거 한국에서도 익숙한 존재였다. 소설가 겸 시인인 이상이 1936년에 쓴 소설 ‘날개’에는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 싫었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실제로 빈대를 잡으려다 집을 태운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새마을운동이 벌어진 1970년대 이후 불결한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맹독성 살충제가 쓰이면서 한국 토종 빈대는 사실상 박멸된 것으로 인식됐다. 현재 창궐한 빈대에 대해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고 국외여행이 급격히 늘면서 외국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학 기숙사에서 빈대가 출몰했다’ ‘대중교통에서 빈대를 목격했다’는 등의 글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빈대 포비아’를 호소하고 있다.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관련 커뮤니티엔 빈대 퇴치 방안을 묻는 글이 쏟아진다. 지난 10일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기존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빈대를 방제할 수 있는 대체 살충제 8종의 사용을 긴급 승인했다. 하지만 이는 전문 방역업체용이지 가정용은 아니다. 가정에서 빈대가 발견될 경우, 청소기로 흡입한 뒤 드라이어나 스팀 다리미로 살균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 대안으로 꼽힌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빈대 문제를 개인 또는 사설업체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공공방역 체계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질병관리청 등이 주도해 계획적인 빈대 예방 교육과 공동방역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바이러스든 해충이든 국경이 없는 시대, 불청객 빈대가 다시 한번 공공방역 시스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유선희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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