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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력 해바라기 수사로 가나…세 검사의 길

등록 2023-10-30 07:00수정 2023-10-30 08:45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정환봉ㅣ법조팀장

서울지하철 2호선 서초역 6번 출구에서 나오면 왼쪽에는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오른쪽에는 서울중앙지검이 보인다. 북쪽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10차선의 반포대로가 좌우의 건물들을 가른다. 넓은 도로 양쪽에는 화환이 줄을 섰다. 잎을 활짝 피운 붉은 거베라와 청명한 하늘의 구름을 닮은 흰 국화가 가득하다.

두 꽃의 꽃말은 사랑, 그리고 감사라고 한다. 하지만 따뜻한 꽃말을 가진 꽃들 사이엔 ‘천벌’ ‘사망’ ‘구속’과 같은 서늘한 단어들이 빼곡하다. ‘시민’들이 보내고 보수단체가 관리한다는 화환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에 대한 적대도 담겼다. 검찰과 법원 등을 취재하는 ‘법조팀’에 처음 출입한 것은 2014년, 9년 만에 다시 돌아온 반포대로의 낯선 풍경이다.

낯선 것은 풍경뿐이 아니다. 2014년만 해도 검찰이 대놓고 법원의 결정을 들이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검찰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지 않았지만, 요즘처럼 일상적이진 않았다. 피의자를 향한 검찰의 직접적인 비난도 지금과 같은 빈도와 수위는 아니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서울중앙지검의 송경호 지검장, 고형곤 4차장, 강백신 반부패수사1부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맡았다. 그리고 이듬해 모두 좌천됐다. 2020년 1월 송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에서 여주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후 수원고검 검사가 됐다. 고 차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에서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장, 포항지청장으로 밀려났다. 반년쯤 지나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강 부장검사 역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부부장에서 통영지청으로 발령났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과잉 수사 논란을 떠나, 권력이 자신을 겨눈 수사를 하면 좌천시킨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적대가 생긴다. 마음이 거칠어지고 말이 뾰족해진다. 내가 정의고 상대가 불의라는 신념이 굳어진다. 거기까지는 뭐라 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런 마음으로 힘을 휘두르게 됐을 경우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세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과 차장검사, 부장검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힘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국정감사 때 송 지검장이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한건 한건 중대한 구속 사안”이라며 적대를 숨기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권력의 편에서 수사하면서 우리만 정의이며 상대를 불의라 단정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정의로운 우리는 잘못을 하지 않으며, 악한 저들은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믿음은 힘을 제어하지 못하게 한다. 가뜩이나 강력한 수사권을 권력의 반대편에 선 사람에게만 제한 없이 쏟아내는 것을 우리는 보통 ‘정치수사’라 부른다.

혹여 이 모든 것이 오해일 수도 있다. 송 지검장 말대로 이재명 대표의 혐의가 정말로 중대 사안이어서 수사의 필요가 클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대선 개입 여론조작’ 수사를 보면 그 의심은 오해가 아님을 보여준다.

‘윤석열 검증 보도’만 콕 찍어 압수수색한 이 수사의 라인업 역시 ‘송·고·강’이다. 전국에서 수사를 가장 잘한다는 검사들이 모이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를 중심으로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일반 형사사건인 명예훼손 수사에 달려들고 있다. ‘피해자 윤석열’을 위한 수사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범죄 수사’라는 명분을 들이대는 것은 아름다운 꽃으로 증오의 언어를 잠시 가리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에 충성하는 수사를 끝까지 정의로 포장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찬 바람이 불면 꽃은 시들고 그 뒤에 숨은 글씨는 더 선명히 드러난다. 세 검사가 끝내 마주할 계절이 그런 황량한 겨울은 아니길. 아직 너무 늦지 않았다고 믿는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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