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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민의 그.래.도] “아름답게 살아야 해요”

등록 2023-10-27 09:00수정 2023-10-27 10:08

지난달 25일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땡땡마을) ‘반딧불이생태교실’에서 김강수 마을교사가 애반딧불이 애벌레를 보여주고 있다. 김소민 제공
지난달 25일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땡땡마을) ‘반딧불이생태교실’에서 김강수 마을교사가 애반딧불이 애벌레를 보여주고 있다. 김소민 제공

김소민 자유기고가

이 노란 티셔츠 입은 남자에게 반딧불이는 무엇인가? 그는 작은 코딱지 같은 애반딧불이 애벌레를 보여줬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땡땡마을) ‘반딧불이생태교실’ 수조에는 애반딧불이 애벌레 8천여마리가 자라고 있다. 땡땡마을 마을 선생님인 김강수(62)씨는 3년째 매년 10월 애반딧불이 애벌레를 울주군 마병천과 척과천에 각각 2천마리씩 풀어준다. 다음해 6월이면 그중 50여마리 정도만 빛을 낸다. 다 죽었다.

게다가 척과천 근처에 아파트를 짓고 있다. 한층 한층 올라올 때마다 그는 애가 탄다. 아파트가 높이 서면 빛 교란 탓에 반딧불이는 짝짓기를 할 수 없다. 애반딧불이 애벌레는 냇가 촉촉한 땅에 땅콩 모양 집을 짓고 그 안에서 변태한다. 그런 땅을 찾기 점점 힘들다. 물길은 직선화되고 제방이 섰다. 그는 그래도 앞으로 10년은 계속 반딧불이를 방사할 거다. 나는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저는 충격을 잘 받아요.” 군대 제대하고 경주 남산을 찾았다가 “충격받았다.” 석불들을 보고서. 프라이드 자동차와 민족대백과사전 25권을 할부로 샀다. 5년 동안 전국을 돌며 문화재를 샅샅이 뒤졌다. ‘우리 얼 찾기’ 모임을 만들고 문화유산 가이드를 했는데 이 활동이 신문에 났다. 방송까지 출연했다. 유비시(ubc)울산방송 등에서 고정 꼭지를 맡았다. 어느 날 방송 중간 짬이 나 울산 들꽃학습원에서 벌인 ‘시민들을 위한 들꽃교실’에 갔는데, 강사가 나뭇잎 다섯장씩 따 오라고 했다. 하얀 전지에 50개 잎사귀가 모였다. 그는 또 “충격받았다.”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렇게 다양하구나.” 식물에 빠져 ‘울산의 수생식물’ ‘울산의 야생화―산을 중심으로’ 책 두권을 냈다.

13년 전 들꽃학습원의 반딧불이 복원사업에 참여하면서 그는 세번째 ‘충격적 사랑’을 만났다. 도시에서 자란 그는 그때까지 반딧불이를 본 적이 없었다. “별처럼 반짝이더라고요. 그걸 보면 그냥 쓰러지는 거야.” 자연 상태 반딧불이를 보러 계곡을 쏘다녔다. 7~8마리 반짝이던 곳을 다음해 찾아가면 여지없이 없었다. 4년 만에 들꽃학습원이 반딧불이 사업을 접고, 갈 곳이 없어진 그와 반딧불이에게 홀로 사는 할머니가 손 내밀었다. 들꽃학습원에서 꽃을 심고 교실을 청소하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조립식 집 옆 시멘트로 지은 폐가가 반딧불이 집이 됐다.

사랑은 정성을 먹고 자란다. 샬레에 이끼를 깔고 두 마리씩 넣어줘야 알을 잘 낳는다. 알이 깨어나면 수조로 옮긴다. 애반딧불이 애벌레는 다슬기를 먹는다. 자연 상태에서야 아기 애벌레는 아기 다슬기를 먹지만 수조 속에선 그럴 수 없다. 그가 다슬기를 잘게 썰어줬다. 그러면 물이 쉽게 오염된다. 개천에서 매일 물을 퍼와 갈아줬다. 겨울엔 5도 이하로 온도가 내려가야 성충으로 잘 자라니 난방할 수 없다. 그는 긴 밤을 야행성인 반딧불이를 관찰하며 보냈다.

그는 반딧불이를 먹이고 할머니는 그에게 밥을 먹였다. 밭에서 상추 뽑아 비빔국수를 해주곤 했다. 그는 밭일 일손을 보탰다. 반딧불이들이 이사 오고 얼마 뒤 할머니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고 했다. 암이었다. 그가 병원에 모시고 다녔다. 할머니는 숨지기 전 그에게 금목걸이와 쪽지를 남겼다. “이 목걸이를 반딧불이 복원하는 데 써.” 그는 할머니와 보낸 시간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웠어요.”

할머니가 숨지고 집은 헐렸다. 그 지역엔 아파트가 밀고 들어왔다. 그와 반딧불이들은 다시 갈 곳이 없어졌다. 울산시청 태화강 전망대에 어렵사리 8평 공간을 얻었는데 1년 만에 자리를 옮겨야 했다. 반딧불이 알이 깨어날 즈음이었다. 속이 탔다. 알음알음, 어렵사리 2020년 6월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 급식실로 들어왔다. 이 생태교실에서 아이들은 반딧불이 생애를 관찰하고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애반딧불이 애벌레가 12월쯤 물속에서 빛을 내거든요. 서서히 밝아졌다 사라져요. 그 불빛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어요. 제 애인이에요. 반딧불이뿐만 아니라 곤충을 알게 되면서 자연을 보는 눈이 달라져요. 눈이 뜨이는 거야. 그래서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곤충 한 마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쉽게 절망하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답게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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