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경의 이방인, 초라함의 상대성]
7 _사장님들과 인간 기계
사장에게 이주노동자의 숙식에 관해 물으며, 밭 옆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냉난방은 커녕 양동이에 쇠막대로 전류를 흘려 물을 데우게 하면서도 한달 방세 17만원을 떼는 곳도 있고, 폐가에 재우며 전기·통신비 등을 더해 1인당 50만원씩 받는 사용주도 있다고 하니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사용주였다.
“사장도 사장님, 사장 여동생도 사장님, 그 여동생의 남편도 사장님, 사장의 아버지도 사장님. 한국사람은 다 사장이야.”
4년 차 이주노동자 형님이 노래하듯 말하는데 8년 차 형님이 화음 쌓듯 끼어들었다.
“우리 회사는 운전사도 사장님이야.”
“맞아. 일하는 사람은 외국인 네명 뿐이지.”
로빈씨가 이주민방송 영상아카데미를 수료하며 만든 다큐멘터리 ‘형들의 이야기’에 나온 장면이다.
두달 전,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섹 알 마문 수석부위원장과 인터뷰할 때 그에게 옳다구나 하고, 이주노동자들이 한결같이 ‘사장님’이란 호칭을 쓰는 이유를 물었다. 내가 마주했던 이들뿐 아니라 각종 매체에서도 이들은 화가 났을 때조차 사용주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인이 박인 압박이었을까? 내 기억에 한국인은 예전부터 사장님 소리를 좋아했다. 90년대 초까지 다방에서 ‘사장님, 전화 받으세요’라고 소리치면 손님들이 우르르 일어나곤 했는데 이를 물리친 초유의 사건이 ‘삐삐치신 분’이었다. 섹 알 마문은 이주민을 주제로 여러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만들어왔기에 답을 주리라 여겼다. 그는 내게 로빈의 다큐를 줬고, 나의 상상을 화르륵 날리는 말을 했다.
“다 사장님이니까요. 제가 일을 시작했던 25년 전과 달리 한국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이주노동자를 동료로 보는 시선이 사라지고 있어요. 제일 밑바닥에 있으니까요. 제가 90년대에 미등록이 되었을 때조차 공장에서 한 공정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제는 구조적으로 이주노동자만 분리되었어요. 일하는 기계라는 생각이 만연합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노동집약적인 작업장에서 일한다. 너나없이 같은 일을 해도 이주노동자가 자신만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모든 한국인이 윗사람이기 때문이다. 호통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윗사람들은 이주노동자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그냥 ‘외국인’ 취급한다고 했다. 외국인의 의미가 '관리 대상자'를 지칭하는 명사가 된 것 같다.
아시아 16개국 청년들이 1년 넘게 한국어 능력시험을 준비해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아 3년간 체류할 일터에 당도한다. 1년10개월 연장할 수 있고, 사업주가 인정하면 재계약해 최장 9년8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다. 이들의 노동은 매일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시포스 노동이다. 한 직장에서 4년10개월 일하고 재계약해도 경력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임금인상은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만이다. 한국인이면 입사한 지 3개월만 돼도 팀원이 없을지언정 팀장으로 불리는 게 케이(K)-직장문화인데, 이주노동자는 끝까지 외국인, 일하는 사람이다. 국적과 비자가 기업에서 정직원과 계약직을 가르는 출입증 색깔처럼 초라함을 강요하는 바코드가 되었다.
이름도 한국인의 편리와 기분에 따라 정해진다. 꼬빌은 까빌이 되어야 했고, 사무엘은 무엘, 안드레는 드레로 친근과 하대 사이를 줄타기하며 불리는데, 세계 어디를 가나 중요한 사람의 이름은 제대로 불린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내 영어 이름도 꽤 오랫동안 히컹 아안이었다.
시물의 ‘사장님’은 첫해부터 ‘재계약하고 10년 채우자’는 말을 했다. 성심을 다했다. 하지만 재계약은 없었다. 이유는 일요일에 숙소에 있지 않고 예술하러 나가서라고. 시물은 섹 알 마문 감독의 동료 창작자이자 배우였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캐스팅되어 신문에도 나왔는데, 사장은 월요일 근무에 어떻게든 지장을 줬을 거라며, 노동하라고 데려왔으니 노동만 해야 했다고 심판을 내렸다.
사용주는 비자 허용 범위를 정하는 법무부 권한뿐 아니라 몸 상태를 판단하는 의사 권한까지 부린다. 고용허가제 아래서는 사용주 동의를 받아야만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사용주가 임금체불, 폭행, 성폭력이나 계약을 위반할 경우 예외를 두지만 이주노동자가 증명해야 한다. 섹 알 마문 감독이 다큐멘터리 ‘노웨이 아웃’에서 추적한 네팔노동자 만 바하르 붓다는 히말라야에서 살다가 가스보일러를 때는 비닐하우스에 투입되자 고통을 호소했다. 사업주는 사업장 변경을 막았고, 그는 우울증을 앓다 자살시도를 했다. 정신적으로 위기라는 의사의 진단까지 묵살했다.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미등록(불법체류)을 선택하라는 의미다. 이 경우 많은 노동자가 체불임금을 포기하고 사업주에게 2백만원 내외 이전 비용을 내고 새 일터로 간다. 고용노동복지센터를 찾아야 하지만 이들이 학습한 방법은 살기 위한 빠른 체념이었다.
사업주도 억울함을 호소한다. 몇번 동의해줬더니 고용노동부로부터 벌점을 받아 이주노동자 배당 인원이 반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새 노동자를 배정받는 시간도 수개월씩 길어져 수확 때를 놓쳤다고 했다. 한 농장주는 상습적으로 술주정 부리는 한국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했다. 한국인을 해고하면 1년간 이주노동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을 지탱하기 위한 고용허가제인데, 내국인 일자리 보장을 끼워 넣은 것은 2천년대 들어 번진 ‘이주노동자가 한국 청년 일자리 뺏는다’는 혐오를 반영한 것일까?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일상은 멈춘다. 채소, 닭, 돼지, 오리, 말, 물고기 등 다 이주노동자가 키우고, 아파트도 이주노동자가 짓는다. 쇠붙이 플라스틱 등 사람 손이 닿아야 하는 현장에는 그들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 사용주와 노동자 모두 행정과 정치가 대중의 꽁무니를 쫓기에 시대를 거스른다고 지적한다. 행정은 결코 이주노동자와 같이 살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는 듯 손사래 친다.
요즘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엠제트(MZ)세대다. 실시간 연결되는 커뮤니티가 있어 신참도 누적된 사용자의 갑질 빅데이터만큼 이를 피할 경우의 수를 두고 사용자와 밀당한다. 계약서 서명을 늦추며 애태우고 그 와중에 사라지기도 한다. 사용주는 벌점까지 받는데, 이는 당분간 노동력 수급이 어렵다는 신호다. 이 또한 고용노동부가 사업주 단속과 교육을 방기한 결과라는 원망으로 이어진다. 사업장 변경에 따른 사용주 벌점만이라도 제거하자. 그래도 당장 노동자가 빠지면 난감한 인력부족 시절에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변경하면 재계약이 무산된다. 세번 이상 옮길 수도 없다.
전남에 있는 한 양돈장에서 유니콘을 보았다. 직책이 몇개 없다. 스무명 직원 중에 이주노동자가 7명인데, 각자 정해진 업무를 책임지는 수평적 관계다. 자동화 설비가 주축인 양돈장의 특수성 때문일 수 있지만 한국인 밑에 이주노동자가 있는 형식이 아니었다. 모든 직원의 기본급을 매년 인상한다. 사장에게 이주노동자의 숙식에 관해 물으며, 밭 옆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냉난방은 커녕 양동이에 쇠막대로 전류를 흘려 물을 데우게 하면서도 한달 방세 17만원을 떼는 곳도 있고, 폐가에 재우며 전기·통신비 등을 더해 1인당 50만원씩 받는 사용주도 있다고 하니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사용주였다.
정 사장네 기숙사는 방 8개, 욕실 2개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신축 전원주택이다. 1인 1실에 전기·수도·인터넷, 공용 물품과 쌀과 고기를 제공하며 월 식비 35만원을 지급한다. 기숙사 거실 통창 밖으로 길쭉한 화분이 줄 맞춰 놓여 있다. 베트남 고추가 익어가고, 고수가 너울거린다. 모범사례라고 하자 정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표준에 맞추느라 애썼는데 최고가 된 역설적 허탈감이라고 할까?
‘일만 하자’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런데, 눈 뜨고 보내는 하루의 반이 그 일하는 시간이다. 당신이 안녕하기를.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대담집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담 ‘어크로스 페미니즘’, 문명의 현재와 이를 만들어온 개인의 마음 운용 실체까지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지성 29인과의 대담 3부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대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최재천의 공부’,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국내 말목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바샤. 이주노동자의 삶을 조명한 섹 알 마문의 다큐멘터리 ‘노웨이 아웃’의 한 장면. 섹 알 마문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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