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1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춘재 | 논설위원
2016년 12월 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에 임명된 ‘검사 윤석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그가 박근혜 정권 초기에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된 것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지 않겠느냐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한 말이다. 수사권은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지, 검사 개인이나 검찰 조직의 ‘사적 보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검사가 대통령이 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의 ‘보복 수사’가 기승을 부린다. 겉은 전임 정권의 비리를 처벌하는 ‘신적폐청산’으로 포장했지만, 속은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권에 대한 ‘사적 복수’에 가깝다. 지난 9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도 그중 하나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인 장 대표는 지난해 7월 펀드 사기 혐의로 이미 한차례 구속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금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서울남부지검은 올해 9월에 또 수사할 게 있다며 장 대표와 직원들에 대해 ‘별건’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일부 혐의에 대해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어 보이고, 일부 혐의에 대하여는 충분한 소명이 부족하여 피의자의 방어 기회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관련 형사사건도 진행 중이어서 이미 상당한 증거가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한마디로 검찰이 문제 삼는 ‘별건’이 죄가 되는지 불분명한데다, ‘본건’에 해당하는 재판에서도 1심에서 무죄가 났으니 구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검찰 수사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검사가 주장하는 근거들은 (증거) 자료를 잘못 해석한 결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사가 펀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소한 게 아니냐고 면박을 준 것이다. 검사가 제정신이라면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항소심 재판에 집중할 텐데 엉뚱한 짓을 하다 연거푸 망신을 당했다. 장 대표를 구속해서 항소심 재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들 속셈이었나. 1심 판결은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펀드 판매사(은행, 증권사)의 책임이 크다고 봤는데, 여기에 대한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검찰이 투자자의 피해 회복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검찰이 장 대표를 물고 늘어지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디스커버리 펀드에는 그의 형 장하성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투자했다. 보수언론들은 이 펀드에 ‘장하성 펀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권력 실세가 개입한 펀드 사기’라고 공격했다. 틈만 나면 전 정권 공격에 열을 올리는 윤 대통령의 취향에 딱 맞는 수사다. 그래서일까. 서울남부지검의 수사 책임자들은 최근 검찰 인사에서 나란히 승진했다. ‘국내 최고의 금융·증권 전문 수사단’을 낯부끄럽게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윤석열 사단’의 좌장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이 결재한 인사다.
수사 대상자들은 억울한 게 있어도 검찰의 보복이 두려워 입도 뻥긋 못한다. ‘정권의 돌격대’를 자처한 감사원에 의해 ‘통계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문재인 정권의 정책 담당자들도 마찬가지다. 통계 조사와 작성에 대규모 인력이 참여하는데 어떻게 조작이 가능하냐고 반박할 법한데도 숨죽이고 있다. 지난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국회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증거인멸 우려’로 구속된 것을 보고 겁먹은 것 같다. 검찰이 노리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지만 무섭다고 피하면 계속 괴롭히는 게 ‘깡패’의 속성이다. ‘해병대 수사 외압’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과 감사원의 ‘표적 감사’에 저항한 조은석 감사위원에겐 오히려 ‘깡패’들이 겁을 먹는다. 감사원과 국방부, 해병대 수뇌부를 보라.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고 자꾸 ‘형님’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검찰은 최근 ‘이재명 전담 수사팀’을 수원지검에 새로 꾸렸다. 앞서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로 역시 망신을 톡톡히 당한 윤석열 사단 검사를 승진시켜 지휘하도록 했다. 이 대표의 기존 사건에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별건’까지 갖다 붙였다고 한다. 윤석열 사단이여, 이번만큼은 ‘보복 수사’가 아니길. 여러분의 주군은 검사가 그런 짓 하면 “깡패”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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