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이 상속세 폐지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한국의 보수 일간지와 경제지들이 환호하고 있다. 1796년 근대적 의미의 상속세를 처음 도입한 나라가 폐지할 것 같으니, 세계적으로 상속세율이 높은 우리도 얼른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영국의 상속세율은 최고 40%로, 일본(55%)·한국(50%)·프랑스(45%)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40%)과 함께 네번째로 높다. 하지만 공제 기준이나 과세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고 소득세도 따져봐야 해서 상속세 최고 세율만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한국 언론이 상속세 폐지가 세계적인 추세라며 예로 드는 스웨덴의 소득세는 연소득 7천만원 기준 52%로 우리나라(24%)의 두배가 넘는다. 스웨덴은 상속세를 없애는 대신 30%의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를 내도록 했다.
참여연대 조사를 보면, 총세수 대비 소득세와 상속세 비중은 오이시디 평균이 24.3%인데, 한국은 17.6%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득세와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4.3%로 오이시디(8.5%) 절반에 불과하다. 한국의 상속세율이 높은데도 과세 비중이 낮은 이유는 각종 공제가 많아서다. 상속세 과세가액 대비 결정세액이 16.7%(2017년)에 불과하다. 사망자 중 상속세를 내는 비중도 6.4%(2019~2021년 평균)밖에 안 된다.
상속세 폐지론자들에게 토마 피케티의 경고(자본/소득 비율이 20세기 초 불평등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나 2018년 오이시디 권고(자산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어 상속세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들리지 않는다.
고액자산가들의 ‘감세 천사’ 윤석열 정부는 상속세가 기업 승계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민원을 받들어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매출 4천억원 이하에서 1조원 이하로, 공제금액을 500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지난해 마련했다. 또한 현행 상속세의 ‘주는 사람’ 기준(유산세)을 ‘받는 사람’ 기준(유산취득세)으로 바꿀 계획이다. 상속인 기준으로 바뀌면 총액이 줄어 세율이 낮아지니 부자들에게 유리하다.
문재인 정부 때도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변경하라고 정부에 권고했지만, 당시 기획재정부는 세수 감소를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초과세수로 세금이 남아돌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안 된다고 하더니, 역대급 세수 펑크로 곳간이 텅 빈 윤석열 정부에서는 되나 보다. 가재는 게 편이다.
이재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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