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최근 상속세와 증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최고 한계세율이 50%인 현재의 세율 구조에서는 지배주주 일가 자녀들이 회사 주식을 상속 또는 증여받을 때 세 부담이 너무 커서 주가를 떨어뜨려서라도 세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또 세금 납부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일감 몰아받기 등 각종 사익편취 행위가 불가피하며 이 때문에 회사 가치는 더욱 저평가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상속증여세의 세율 인하를 제시하고 있다.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그 원인 진단과 처방에 수긍하기 어렵다.
우선 회사 가치가 저평가된 이유는 고율의 상속증여세율 때문이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배권을 유지해 다음 세대에서도 계속해서 회사를 직접 경영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과욕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러한 과욕만 포기한다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게 유일한 목적이 되어 저평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주가를 끌어올리면 세 부담이 높아져 주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지만 팔지 않고 남은 주식의 가치가 지배권 유지를 위해 주가를 떨어뜨렸을 때의 주식 가치보다 얼마든지 더 높을 수 있다.
높은 세율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면 세율 인하도 그 처방이 될 수 없다. 올바른 처방은 회사를 계속해서 직접 경영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과욕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배주주 일가가 회사로부터 빼앗는 다양한 형태의 사적 이익을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줄이면 된다. 더 이상 특혜 채용으로 입사한 뒤 고속 승진을 할 수 없고, 특별히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도 없으며, 일감을 몰아받거나 사업 기회를 가로챌 수도 없다면 굳이 골치 아픈 경영에 직접 참여할 이유가 없다.
성공적인 거버넌스 개혁으로 실제 이런 상황에 이르면 지배주주 일가 자녀들은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게 될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나 회사가 자손만대 번창하길 바라던 창업자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족 승계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핏줄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으로만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사적 이익을 가져다줄 정도의 지배력이 없는 만큼 상속증여세를 부과할 때 주식 평가액을 20% 할증하는 제도도 사라진다.
지배주주 일가가 지배권 유지 욕심을 내려놓으면 최근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병들게 했던 계열사 간 부당 합병, 쪼개기 상장, 자사주의 마법 문제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들 문제도 그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욕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 욕심만 내려놓으면 합병 비율을 지배주주 일가에게 유리하게 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유망 사업 투자재원을 모회사 유상증자가 아닌 쪼개기 상장으로 조달할 필요가 없으며, 인적 분할 후 자사주를 한쪽 회사에만 배정할 실익도 없다.
이처럼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매우 크다. 이에 반해 상속증여세율 인하 처방은 문제 해결에 별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엄청난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 먼저, 세율 인하 폭이 너무 작으면 애초 논의의 발단이 된 회사 가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주가를 떨어뜨리거나 세금 납부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각종 사익편취 행위를 할 유인이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율을 대폭 낮출 수도 없다. 부의 불평등 문제와 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속증여세는 특별히 부의 세습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만약 상속증여세 인하로 부의 세습이 계속된다면 불로소득계층의 양산, 기회 불평등 심화, 근로의욕의 저하 등을 초래해 우리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려고 죄 없는 상속세를 건드리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식 투자 환경만 더욱 열악하게 만들 수 있다.
지배주주 일가가 지배권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를 개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정답이라면 이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아직 채택되지 않은 개혁 방안들이 즐비하게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