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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랍의 배신자’라 비난받은 중동 평화의 주역

등록 2023-10-05 18:35수정 2023-10-06 02:37

[나는 역사다] 안와르 사다트 (1918~1981)

외세를 물리치고 근대화를 이뤄야 했다. 이집트의 파루크왕은 이 일을 잘할 것 같지 않았다. 왕정을 무너뜨린 조직 자유장교단, 중심 인물이 나세르였고 사다트는 그 측근이었다. 1952년과 1954년 쿠데타를 거쳐, 1956년 나세르는 대통령이 되었다.

나세르 정권에서 사다트는 견제받는 2인자였다. 나세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고 이집트 안에서도 나라 밖 아랍 세계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1967년 6일전쟁이 터졌다. 이스라엘의 기습을 받아 이집트는 전쟁에 지고 시나이반도를 빼앗겼다. 나세르는 체면을 구겼고 1970년 죽었다.

대통령이 된 사다트. 그의 국제 외교는 처음과 끝이 다르다. 치밀한 준비 끝에 1973년 10월6일 이스라엘을 기습한다. 욤키푸르 전쟁이었다. 시나이반도를 되찾고 아랍 세계의 위신을 높였다. 이때 이집트는 소련과 사이가 좋았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뒷배를 봐줬기 때문에 소련은 아랍 세계를 도왔다고 한다.

그런데 재선 뒤 사다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밀어붙였다.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중동 평화의 길을 열었다. 이집트는 미국과 친한 나라가 됐고, 사다트는 1978년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랍 세계는 반기지 않았다.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은 이 일 때문에 나라를 되찾기 힘들게 됐다고 생각했다.

사다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 사람인가, 아랍을 배신한 사람인가?

“사다트의 운전기사가 물었다. ‘우회전할까요, 좌회전할까요?’ 사다트가 되물었다. ‘나세르는 어떻게 했지?’ 기사가 답했다. ‘좌회전했지요.’ 사다트가 말했다. ‘그럼 우리는 왼쪽 깜빡이를 넣고 우회전하세.’”

이집트에 돌던 우스개다. 전임자와 비교당하는 인기 잃은 지도자가 됐다는 뜻이다. 말년에는 반대 운동에 시달렸다. 1981년 10월6일 욤키푸르 전쟁의 승전기념일 시가행진을 하던 중 군인들이 들이닥쳐 사다트에게 총을 난사했다. 그 뒤를 이은 이는 ‘아랍의 봄’ 때 쫓겨난 무바라크 대통령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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