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에 여자가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고, 대낮에 샛길을 산책하며 살해당할 걱정 하지 않아도 되고, 여성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수행하고 그것에서 얻는 높은 성취감이 출산으로 훼손되지 않게 심도 있는 정책을 구상하고, 영유아에서 유치원까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자녀를 안심하고 기를 수 있게 짜인다면, 자식은 부모가 낳지만 부모의 자식이 아니라 국가의 국민이라는 의식과 제도가 정착된다면, 자식을 기르는 동안 어머니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꿈과 희망과 능력이 억눌리지 않게 된다면….
어미 판다 ‘아이바오’와 새끼 ‘푸바오’. 에버랜드 제공
이경자ㅣ소설가
저는 요즘 매주 기다리는 소식이 생겼습니다. 에버랜드 아기 판다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푸바오’의 동생들인 쌍둥이 판다 동영상이 올라와 거푸 두번을 보았네요. 쌍둥이 판다 이름 짓는 공모 이벤트에도 열심히 참여해 매번 제 마음에 드는 이름에 투표합니다.
제가 판다들 동영상을 기다리고 되풀이해 돌려 보는 이유는 생명에 기울이는 ‘진실’과 ‘정성’이란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엔 거짓이 없더라고요. 거짓 없는 생활, 관계를 동영상으로 바라보며 생각지도 못했던 걸 느끼고 배우고 반성하고 부끄러워합니다. ‘강바오’라고 불리는 사육사님의 태도에도 놀랍니다. 동물과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해서.
저도 젊은 날 아이를 배고 낳고 젖 먹이고 기르고 가르친 적이 있는데, ‘아이바오’의 ‘푸바오’에 대한 사랑엔 한참 못 미쳤던 것 같습니다. 제 모성엔 순수함이 부족했으니까요. 열등감과 욕망과 분노까지 뒤죽박죽으로 뭉쳐 어머니라는 권력을 휘둘렀으니까요. 일종의 죄악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될 억압은 부모, 특히 어머니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바오’의 모성에는 권력이 없더라고요. 저에겐 사회화된 소유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낳은 내 자식, 내 것. 내 것이므로 내 마음대로 한 것이지요. 권력과 소유로 정교하게 짜인 사회성격으로 제 정신이 익어 있었으니까요. 한 사람의 크고 작은 고통들, 불안과 공포는 어머니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자식에게 전이되겠지요. 무한경쟁과 차별과 불공정과 모순의 가치질서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버무려진 모성애.
특히 아주 작은 읍에서 나고 자란 엄마의 사회적 열등감과 열패감의 보상심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젠 반성해도 소용없는 것.
그래서 인생은 참 무섭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의 부끄러움을 내비치며 하려는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아이 한명에게 주는 혜택이 2천만원에서 4천만원이라고 하던가, 언뜻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 전 정부들은 출산 장려를 한다며 수백조원을 썼다고 합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이 자리에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세금이 출산을 장려하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결혼하고 자식을 낳게 했을까요?
사람 사이에 생기는 어려움 중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쉽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돈이 없어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적잖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낳지 않는 일이 돈이 없어서일까요?
수십년 전 우리나라에서 봄철만 되면 춘궁기라고 해서 보릿고개를 못 넘기고 굶주리는 가족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도 가난해서 자식을 낳지 않았던 부모는 없었을 것입니다. 경제개발이 시작되고 잘살아보자고 외치고 점점 돈이 우리 삶을 지배해가던 때 정부는 ‘산아제한’을 적극적으로 정책으로 삼아 시행했습니다. 가난할 때였습니다. 정부에선 피임기구를 나누어주고 피임도 시켰습니다. 아들딸 구별 없이 다섯, 셋도 좋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그런 끝에 인구가 조절되고 의식이 변하고 마침내 출산율이 사망률을 밑돌게 됐습니다. 학생이 넘쳐 하루에 2부제로 수업을 하던 초등학교는 반세기 만에 학생 수가 줄어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이 낸 세금을 어디에 쓸지 정작 국민은 정하지 못합니다. 소외된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의 돈을 거둬서 이리저리 쪼개 쓰는 정부. 그 커다란 국정과제 중에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수백조원으로 안 된 일, 수천조원을 쓰면 아이를 낳을까요? 누가 자갈밭에 볍씨를 뿌리려 할까요.
왜 젊은이들이, 여성이 어머니 되는 일을 꺼리고 심지어 두려워할까요? 아이를 낳고 싶은 조건, 어머니가 되고 싶은 생태계를 만드는 데 세금을 쓰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람 사는 곳에 범죄가 전혀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밤길에 여자가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고, 대낮에 샛길을 산책하며 살해당할 걱정 하지 않아도 되고, 가부장제 아래에서 미덕으로 자리 잡은 결혼 생활을 공정한 시선과 잣대로 살펴보고, 여성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수행하고 그것에서 얻는 높은 성취감이 출산으로 훼손되지 않게 심도 있는 정책을 구상하고, 영유아에서 유치원까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자녀를 안심하고 기를 수 있게 짜인다면, 자식은 부모가 낳지만 부모의 자식이 아니라 국가의 국민이라는 의식과 제도가 정착된다면, 자식을 기르는 동안 어머니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꿈과 희망과 능력이 억눌리지 않게 된다면, 어떨까요. 자식을 낳은 어머니가 그것으로 행복한 것은 물론 손해 보는 일이 없다면, 한 사람의 국민으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정말 어려울까요?
고용은 극단적으로 불안정하고, 고위직이나 저명인사들의 파렴치한 사기, 마약 등등. 사기가 뻔한 투기심리 조장, 거짓이나 과장된 광고.
사람을 믿지 못해서 모르는 사람의 친절을 경계해야 하는, 극단적 불신의 사회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누가 우리 사회를 마약과 신종 성매매와 성폭력, 그리고 무차별 살인 등이 일어나는 나라로 만들었을까요. 자본주의의 건강은 신용일 텐데 ‘돈만 주면 인공지능(AI)으로 댓글을 조작해준다’니,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이 총체적 불신을 키우고, 그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회.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불행을 휘두르며 돈을 버는 각종 행태에 책임이 있는 정부, 정치권, 사회 지도층은 뼈아프게 성찰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강토가 아름답고 국민은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했습니다. 그 대한민국을 누가, 사기와 폭력, 마약과 사이비 종교와 불법 도박에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불건강한 나라로 기울게 했을까요. 국민이 희망을 놓아버릴 때,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