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석 문화비평가
자정 가까이 끝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출연했다. 가끔 방송을 마친 뒤 전화가, 대부분 오랫동안 연락 없던 친구에게서 걸려오곤 했다. “야, 니 목소리 엄청 반갑더라” 출장이나 상가 다녀오는 길에 쓸쓸한 마음에 라디오를 켰는데, 내 특이한 억양이 귀에 꽂히더란다. 애매한 사투리로 안부를 나누곤 친구가 맺었다. “동창회도 좀 와라. 애들이 너 궁금해한다.” “그래. 그래야지.” 하지만 나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다는 걸.
“그래서 너는 무슨 계야?” 마지막으로 동창회에 참석한 날 선배가 물었다. “문학계야? 언론계야? 그런 게 있을 거 아냐?” “글쎄요. 무계 같은데요.” 나는 종교란에 ‘무교’라고 쓰듯이 말했다. “야, 울타리 없이 어떻게 살아?” 선배는 어이없어하며 소주잔을 건넸고, 나는 마시는 척하며 버렸다.
그때쯤 나는 친족계와 동창계를 떠났다. 사회생활 초기에 출판계, 잡지계, 만화계 언저리에 발을 댔지만, 어디에도 쏙 들어가진 못했다. 그래서 정처없는 잡문가와 강사로 떠돌아 다녔는데, 덕분에 세상 곳곳 갖가지 계를 널리 구경할 기회는 얻었다.
‘문단 말석’이란 말이 있다. 등단은 했지만 큰 이름은 못 얻고, 문학계의 끄트머리에 겨우 자리한 작가들이 자조하는 말이다. 나는 출판사의 파티나 모임에서 그 말석 옆의 깍두기석에 앉을 기회가 꽤 있었고, 그때마다 그 안의 울퉁불퉁한 위계를 보곤 했다. 계의 중심에 있는 원로와 인기작가, 그들과 친분을 나누려 애쓰는 작가, 편집자도 챙겨주지 않는 말석의 작가…. 그런데 주변의 문학하는 친구들은 그런 말석조차 부러워했다. 거기라도 앉지 못하면 문예지의 청탁도 못 받고, 상 후보에도 못 오르고, 이 세계에서 도태될 거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부정적인 인상을 먼저 전했지만, 계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대학 동창 중에 고향인 지방도시로 내려가 문화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다. 가끔 만나면 얘가 이렇게 수다스러웠나 싶을 정도로 말을 쏟아낸다. 지방에서 꽉 막힌 공무원이나 유지들만 보다가, 그래도 넓은 의미의 ‘문화계’ 일원인 나를 만나 반가운 거다. 인디 문화인들의 네트워킹 행사에서도 비슷한 열기를 느끼곤 한다. 당신들 참 외로웠군요. 그런데 이런 계라도 있다니 참 부럽네요.
모든 직업에는 ‘업계’가 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명함을 나누고, 자신의 롤모델을 찾고, 새로운 트렌드를 익힌다. 서로 경쟁하는 관계일 때가 많지만 그를 통해 성취의 동기를 얻기도 한다. 최근 에스엔에스(SNS)에서 교수들 연구 세미나를 코믹마켓이나 동인 모임에 비교하는 글을 여럿 보았다. 옆 연구실 교수도 모르는 연구주제를 마음껏 떠들 수 있는 ‘학계’,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2차 창작물을 자랑할 수 있는 ‘취미계’는 꽤 닮았다.
직업이나 영리가 아니라 취미나 애호가 중심이 되는 계에 훨씬 큰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곳도 사람들이 많아지면 계의 전통적인 부작용이 나타난다. 동호회를 이윤추구 수단으로 삼기도, 경쟁의식으로 꿈나무를 짓밟기도, 파벌을 만들어 고약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영리한 사람들은 어떤 계에 들어가자마자 우두머리나 인싸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들의 환심을 사려 애쓴다. 명절 때 학원강사에게 떡값을 모아 주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 계에 남기 어렵다.
‘슬램덩크’는 계의 이상향이다. 그 세계에선 주전이든 벤치든, 코트 위에 있든 관중석에 있든, 모두가 스스로 계의 일원임을 확신한다. 거기엔 파벌도 협잡도 없고 건전한 경쟁만 있다. 이기거나 지거나 마지막 1초까지 땀을 흘리는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준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런 계는 존재하지 않고, 요즘은 소년만화에서도 이런 계를 그리지 않는다.
나의 계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다. 아파트 주민회는 함께 텃밭을 가꿔 오이를 나눠 먹을 수도 있지만, 집값을 낮춰 거래하는 주민을 응징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은 아이들의 박물관 탐방을 도와주다가 서투른 초임 교사에게 과도하게 항의할 수도 있다. 계는 항상 그렇다. 포근한 공동체와 집단 이기주의를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