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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핵전쟁과 우리 시대의 광기 [세계의 창]

등록 2023-09-24 18:24수정 2023-09-25 02:34

러시아군이 지난해 10월26일 북서부 플레세츠크에서 핵 훈련의 하나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UPI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지난해 10월26일 북서부 플레세츠크에서 핵 훈련의 하나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UPI 연합뉴스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러시아 육군 대장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가 최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섬뜩한 경고를 내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불가피한’ 결론은 핵전쟁이다. 대량살상무기 사용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것은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 하나만 있으면 된다. 러시아의 목표와 서구의 목표는 각자의 생존과 역사적 영원성으로, 이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무력 투쟁 수단이 사용될 것이다. 이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여기에서 우리도, 적도 물러설 수 없다.” 그는 끔찍한 자기파괴적 학살을 높은 수준의 의무 행위로 포장했다.

이 말을 단순한 전략적 위협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설령 위협으로 의도된 말일지라도 거기에는 그것을 현실로 실현되도록 밀어붙이는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이 논리에는 냉전 시기 핵 재앙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던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 논리와 달리 ‘우리도, 적도’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상호파괴가 ‘불가피’한 것으로 제시된다.

여기서 우리는 ‘생존과 역사적 영원성’이라는 이상한 표현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마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를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는 ‘누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는가’ 같은 문제는 사소해지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표현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뭔가? 우선 단순한 선형적 전개에서 벗어나는 징후를 감지해야 한다. 이달 초 쿠바 정부가 러시아 인신매매 조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시킬 쿠바인을 용병으로 모으고 있는 것을 적발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쿠바 정부는 성명을 내어 인신매매 연결망을 무력화 및 해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엄격하게 통제되는 국가인 쿠바가 이 조직을 정말로 지금 발견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쿠바 정부는 왜 지금 이런 발표를 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를 확고히 지지해온 쿠바조차도 이제 러시아의 위험한 모험에서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지금 유일하게 원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접근법은 러시아의 핵 위협을 인식하되, 외교 및 군사 전략 차원에서는 이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접근법은 러시아의 협박에 굴복해 ‘러시아를 너무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누구도 러시아 영토의 어떤 일부도 공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의 명분으로 자국 영토 공격에 대한 방어를 내세울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다. 세계 핵전쟁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있는데도, 포퓰리즘을 펼치는 신보수주의자들과 캔슬 문화(잘못된 언행을 했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에스엔에스 등에서 제거하는 문화)를 주도하는 좌파들이 서로를 향해 문화 전쟁을 벌이고, 선진국에 사는 많은 이가 태평스럽게 나쁜 날씨나 항공편 취소로 자신의 휴가가 엉망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그런 세계 말이다. 이 전혀 다른 선택지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광기를 보여준다. 우리는 핵전쟁으로 모두가 전멸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포퓰리즘이나 캔슬 문화를 더 거슬려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일상을 제일 걱정한다. 우리는 이성으로는 세 가지 차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마치 이들이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행동한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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