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한 리빙랩(Living Lab) 관련 워크숍 장면. ‘생활 실험실’이란 뜻의 리빙랩은 주민이 주도적으로 생활 속 문제를 발견, 해결책을 설계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회혁신 정책을 뜻한다. 필자 제공
박자행 | 희망제작소 연구원
“이런 걸 하는 곳도 있구나!”
저의 희망제작소 입사지원서 첫 문장입니다. 오늘 초심을 돌이켜 생각해보겠답시고 6개월 전에 끙끙거리며 작성했던 입사지원서를 꺼내보았습니다. 이제 와서 읽어보니 취업준비생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입사지원서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첫 문장에 담긴 감탄만큼은 진심이었던 것이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희망제작소와의 만남은 제 인생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사회초년생, 풋내기 연구자에 불과했던 저는 현장 중심의 사회혁신이라는 가치와 방향, 그리고 직접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뛰어드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동체, 혁신, 참여… 이런 단어들은 교과서에나 있는 것들이었고요. 머리로만 알고 있는 단어라도 논문 속 사례들을 읽다 보면 제법 그럴싸한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거버넌스가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슬그머니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죠. 제게 교과서 속 단어들은 먼 유토피아에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화재관리라는 흔치 않은 분야에 대해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친 뒤에도 어영부영 가방끈만 길어졌다는 아쉬움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습니다. 이후 운 좋게 문화재정비 관련 연구직으로 일하게 되면서, 마음속 갑갑함은 더욱 무게를 더해갔습니다. 사기업일지라도 연구 현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왜 교과서와 실제 연구는 이렇게 다르지? 교과서에서 보았던 사례들은 전부 허상이었을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빙빙 꼬인 질문의 미로 속을 헤매던 와중 우연히 연구 관계자 소개로 희망제작소를 만났습니다. ‘현장 중심의 사회혁신’이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실제로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뛰어드는 사람들이 교과서 속이 아닌 현실에서도 있었던 겁니다. 그제야 텅 빈 껍데기인 줄만 알았던 말들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으니,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습니다. 결국 1년 만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관점, 다른 생각으로 공부해보겠다는 결의로 도시사회학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관점을 다르게 하자고 마음먹으니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박사과정 수료 직후 희망제작소에 입사하고, 어느덧 6개월 차 연구원입니다. 얼마 전까지 사회혁신 같은 말은 들어본 적도 없던 제가 희망제작소의 연구원이라니!
물론 모든 일이 그렇듯 대안과 혁신을 추구하는 일도 늘 즐겁지는 않습니다. 이론과 현장의 중간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매번 어렵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다만 이곳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물어보고 대화하며 배울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활동가의 삶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에 대해 누군가는 백면서생이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워 할 수 있었던 선택도 있었습니다. 저는 교과서 속의 말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어서 이곳에서 배우고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도 달달 외웠던 책 속의 사례가 아니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살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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