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1일 노무현 대통령은 방미·방일 수행 경제계 인사들을 청와대 부근 음식점으로 초청해 오찬을 했다. 노 대통령은 노사관계가 경제의 경쟁력을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앞으로 1~2년 안에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6월1일(일) 12시 노 대통령이 방미외교를 수행했던 재계 대표 31명을 초청해 점심 대접을 했다(토속촌 식당).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총수들이 방바닥에 모여 앉아 삼계탕을 먹는 장면은 진풍경이었다.
재벌 총수 여러 명이 대통령에게 각종 건의를 했다. 대림그룹 이준용 회장이 노사정 대타협과 산별교섭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자 노 대통령은 노사관계 개혁을 약속했다. 효성그룹 회장인 조석래 한미경제인회장이 스크린 쿼터 개선을 건의하자 노 대통령은 “정책실장이 이창동 장관과 의논해서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스크린 쿼터란 영화관이 1년 중 최소한 걸어야 하는 한국 영화의 상영일수를 뜻한다. 할리우드의 물량공세에 대항해 한국 영화를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을 한다. 영화계는 이것을 지키고자 결사적으로 버티고, 미국 영화계와 한국의 재계 그리고 시장만능주의 세력은 이 쿼터의 폐지 또는 감축을 주장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한국 영화계는 내부 분위기가 상당히 진보적이며,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그래서 스크린 쿼터 문제는 말하자면 정권의 우군과 대결해야 하는 매우 곤혹스런 문제였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내가 재직한 경북대 사대 국어교육과 졸업생으로, 소설가로서 큰 상을 받은 뒤 영화계로 뛰어든 국보급 영화감독이다. 사실 참여정부 인수위에서 문광부 장관 인선 때 이창동 감독이 후보로 올랐기에 나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 국위를 선양해야 하는 이 감독이 장관을 하면 영화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아무도 내 편을 들지 않아 압도적 지지로 장관에 임명됐다. 사실 이 감독은 장관 안 하려고 해외 도피까지 했지만 영화계의 열화와 같은 요구로 징집 당하듯 장관이 된 사람이다. 대통령이 갑자기 나에게 이창동 장관과 협력해 스크린 쿼터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해 놀랐고, 재벌들 보는 앞에서 정책실장의 위상을 높여주려는 의도도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 6월17일 오후 국회 문화관광위에 출석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스크린 쿼터 등 현안보고에 앞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점심을 마치고 재벌총수들과 헤어진 뒤 청와대 관저 청안당에서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김진표, 윤진식 장관, 김세옥 경호실장, 이해성 홍보수석과 차 한잔을 했다. 대통령이 나를 보고 “정책실장이 나이스 사태(
24화 참조)로 고생하는 윤덕홍 장관을 좀 위로해주라. 대구 출신 권기홍, 이창동, 김병준 모아서” 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저임금과 스크린 쿼터가 화제에 올랐다. 노 대통령은 “스크린 쿼터는 아주 복잡한 문제인데 사실 한국 영화의 성장은 스크린 쿼터와 무관하고 검열제 폐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6월10일(화) 5시 정책실에서 외교부 조태열(시인 조지훈의 아들), 기획예산처 김성진, 문화관광부 이보경 세 국장과, 동북아위원회 정태인과 스크린 쿼터 1차 토론회를 가졌다. 6월13일(금) 3시 내 사무실에서 스크린 쿼터 문제를 토론했다. 심광현 교수(한예종), 양기환(영화인회의 사무국장), 이창무(극장협회장), 노재봉 박사(KIEP), 최병일 교수(이화여대)와 더불어 톱스타 장미희(명지대 교수)가 참석해 반가웠다. 이창무는 스크린 쿼터 폐지에 반대하면서 날짜 감축은 찬성했다. 노재봉과 최병일도 날짜 감축을 주장했다. 심광현 등 영화계 대표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스크린 쿼터를 감축하면 미국 영화에 잡아먹힌다고 반대했다. 쿼터 감축 대가로 논의되던 국산영화 보조금과 전용영화관에도 반대했다. 미국 영화계의 끼워팔기 등 각종 횡포를 규탄하면서 스크린 쿼터는 한국 영화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역설했다.
나는 이날 저녁 조석래 한미경제인회장과 식사를 했는데 그는 스크린 쿼터보다 좋은 영화가 관객 증가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현상을 놓고 이렇게 생각이 다른 게 놀라웠다. 효성그룹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의 저임금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었다.
2003년 7월2일 서울 남산 한국영화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영화인들이 ‘한미투자협정저지와 스크린 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준)를 결성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6월18일(수) 저녁 7~11시 이창동, 문성근, 안성기, 정태인 비서관과 스크린 쿼터를 놓고 장시간 토론했다(공주식당). 이창동 장관은 적장 격인 미국 영화협회장 잭 발렌티를 직접 만나 스크린 쿼터를 한미투자협정(BIT)에서 분리할 것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발렌티가 만남을 피할 것이라는 것이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처음 만났는데 말수가 적고 호감을 주는 타입이었다. ‘실미도’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해서 실미도 사건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배우 문성근은 조용히 듣기만 하다가 한꺼번에 모아서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했다. 스크린 쿼터는 경제관료와 보수언론의 꽃놀이패라고 표현했다. 나는 스크린 쿼터는 있어야 하지만 날짜 감축은 필요하고 한국 영화에 별로 피해를 안 줄 거라고 주장했다.
“장애물 경기에서 150센티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선수는 허들이 100센티에서 110센티로 높아져도 문제가 없다. 한미투자협정은 투자 자체보다 세계에 주는 신호효과가 크다. 이게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을 거다”라고 말하니 영화인들이 잠시 동요하는 눈치였다. “마음이 흔들리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쿼터 날짜 감축은 댐의 돌을 빼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절대 안 된다고 하기에 내가 댐 중간의 돌이 아니고, 맨 위에 남아도는 돌 몇 개 빼는 거라서 괜찮다고 하자 안성기가 웃었다. 예컨대 현행 1년에 106일에서 90일(25%)로 감축해도 무방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더니 이창동 장관은, “지금까지 스크린 쿼터를 없애거나 낮춘 나라는 모두 영화가 망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래도 90일을 확보하면 망할 리가 없고, 한국 영화는 계속 흥할 거다. 한국 영화의 성공을 위해 스크린 쿼터는 기초에 불과하고, 그 위의 성공 여부는 ‘영화의 품질’에 달려 있다. 한국 영화는 3년 전과 다르고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주장했다. 오늘은 1분도 못 쉬고, 14시간 일해 극도로 피곤한 몸으로 귀가했다.
6월21(토) 11시 한덕수 산업연구원장이 신임 인사차 내 사무실에 왔다. 앞으로 산업에 관한 심층 연구를 부탁하면서 스크린 쿼터 문제를 의논했다. 외교부 조현 국장에게 스크린 쿼터에 대한 미국 쪽 태도를 타진해볼 것을 부탁했다. 6월26일(목) 3시 허바드 미국 대사와 경제참사관이 찾아와 스크린 쿼터를 놓고 대화했다. 7월2일(수) 10시 노 대통령에게 스크린 쿼터 문제를 보고했다. 대통령은 스크린 쿼터 감축과 영화계 지원을 패키지로 해서 설득해보고 안 되면 그냥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자고 했다.
9월9일(화) 저녁 퇴근길에 전화로 제프리 존스(
29화 언론과의 전쟁 2 참조)와 스크린 쿼터를 의논했다. 한국은 90일, 미국은 73일을 주장하니 큰 차이가 아니어서 협상이 가능하다며 9월20일 방미 때 미국 쪽을 설득해보겠다고 한다. 잘 이야기해서 협상이 타결되도록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9월29일(월) 오후 6시 한미동맹 50주년 기념 만찬이 있었다(영빈관). 허바드 대사,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 조석래 회장이 참석했고 최근 조 회장의 며느리가 된 이여진이 통역을 맡았다. 노 대통령이 적당한 길이의 훌륭한 연설을 했고, 미국인들은 모두 기분 좋게 돌아갔다. 여기서 제프리 존스를 만났는데, 어제 미국에서 스크린 쿼터를 73일로 감축하고 한국영화의 미국 내 유통에 협조하는 제안이 왔다고 했다.
11월13일(목) 9시 정책 수석회의(권오규, 김태유, 조윤제, 나 4인 회의)에, 권오규 정책수석은 자주 빠졌는데 오늘도 불참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의논했다. 조윤제 경제보좌관은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플러스 효과가 클 것이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도 해볼 만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농업 문제가 있지만 장차 고려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경제 전문가인 김태유 과기보좌관은 자유무역협정에 회의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두 보좌관에게 스크린 쿼터 문제를 설명해주었다. 며칠 뒤 영화계 대표 4명이 정책실로 담판하러 올 거라 하니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웃으며 “젊은 여배우가 오면 저도 좀 불러주세요”라고 농담을 했다. “하하, 젊은 여배우는 안 올 텐데요”라고 답했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