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집행 당하기 직전, 을지로에 위치한 을지오비베어. 가게 풍경은 40여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박김형준 작가 제공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도쿄 긴자의 128년 업력 경양식집에서 식사했다. 서양식 커틀릿을 개량해 양배추, 밥과 함께 내놓기 시작한 집이다. 돈가스의 원조 격이다. 고기가 낯설었던 당시 일본인들은 튀김옷으로 감싸고, 익숙한 밥이 곁들여진 요리에 마음을 열었다. 같은 값에 더 세련된 돈가스는 일본 어디에 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가게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 맛을 지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 일을 한 세기 동안 해내기도 한다.
도쿄에 골목마다 백년가게가 있는 긴자가 있다면, 서울에는 30년 이상 업력을 자랑하는 노포들이 즐비한 을지로가 있다. 쟁쟁한 가게들 중에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생맥줏집’임을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가게, 을지오비(OB)베어가 있었다. 노가리 값을 올리지 않는 고집과 매일같이 맥주관을 청소하는 성실로 노맥 문화를 처음 만든 유서 깊은 가게. 얼음맥주 유행이 강타했을 때도 이 가게는 선대가 정한 온도를 묵묵히 지켰다. 여름에는 2도, 겨울에는 4도. 공구거리 한복판에서 고된 노동강도를 견디는 노동자들이 잠시 들러 맥주를 사발마냥 들이킬 수 있는 상냥한 온도였다. 목구멍 찌릿한 자극보다는 구수하고 쌉싸름한 보리 맛을 끝까지 느낄 수 있는 운치 있는 한 잔. 소주를 팔라는 단골 성화에도 생맥주 외에 다른 술을 팔아본 적이 없는 고집으로 그렇게 생맥주 문화를 정착시켰다.
재개업행사에서 맥주를 따르는 을지오비베어 가족. 박김형준 작가 제공
올해로 43년 역사를 자랑하는 맥줏집을 지키려고 건물주에게 강제집행 당한 가게 앞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일 년 넘게 상생을 외쳤다. 결국 건물주 가게가 들어섰지만, 연대는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을지오비베어와 시민들은 백년가게법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요구하며 중구청 앞 집회를 이어간다. 일본은 임대차보호법 격인 ‘차지차가 법’을 토대로 세입자에게 계약을 갱신할 권리를 준다. 철거해야 할 만큼 노후한 건물이거나 손님이 더는 찾지 않아 폐업이 불가피한 경우 아니면 계속 장사할 수 있다. 그러니 상인은 그 본분을 고집스레 지킨다. 맛있는 음식을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대접해야 한다는 기능적인 본분 위에 사장과 손님, 골목과 도시는 100년의 공동기억을 켜켜이 쌓는다.
우리는 이웃나라의 백년된 가게들과 그 문화를 부러워하면서도 수십년 뒤 백년가게가 될 가능성이 있는 가게들을 지키는 데는 인색하다. 뒤늦게 백년가게 제도를 만들어 역사를 쌓아 보려해도 30~40년 경력의 노포가 폐업하거나 오랜 역사의 자리를 옮기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 자영업자들이 못나서 그럴까. 결국 을지로에서 자리를 못 구해 마포에 임시 둥지를 튼 을지오비베어, 독특한 개성과 오랜 고집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젠트리피케이션과 재개발로 다음 세대까지 다 영글지 못하고 쫓겨나듯 사라진 가게들은 모두 못나서 제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까. 을지오비베어가 강제집행으로 쫓겨난 이튿날, 집회를 하는데 한 청년이 찾아와 나이 지긋한 오비베어 사장의 손을 잡고 한참 울었다.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한 신참 자영업자였다. 40년 역사의 오비베어가 롤모델이었는데 이렇게 쫓겨나니 막막하고 한스러워 찾아왔단다. 백년의 문화는 자영업자의 고집만으로 만들 수 없다. 도시의 공동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토대와 법, 제도 없이 백년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자. 분열되고 갈등 만연한 도시, 건물은 빼곡한데 마음 둘 곳은 없다. 이제라도 백년의 공동기억을 쌓는 일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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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연탄불에 굽는 을지오비베어 노가리. 박김형준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