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이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 공교육의 한 단면이 드러나면서, 교육주체들의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의 바탕에는 승자독식 사회의 그림자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실해져 가는 공교육의 이면에는 갈수록 고도화, 효율화돼 번성하는 사교육이 존재합니다.
한겨레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작가 10명과 손잡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 미니픽션 10회 연재 ‘슬픈 경쟁, 아픈 교실’을 시작합니다. 격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이번 기획에는 장강명 정진영 주원규 한은형 최영 정아은 지영 염기원 서윤빈 서유미 작가가 함께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엄마, 나 작곡 레슨받고 싶어.”
엄마는 깜짝 놀랐다. 중학교 2학년생이 될 때까지 아들이 단 한번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먼저 밝힌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태연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
“갑자기 작곡 레슨은 왜?”
아들은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티에스(BTS)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솔직히 내가 뷔나 정국처럼 아이돌을 할 외모는 아니란 건 알아. 하지만 좋은 음악을 만들면, 아이돌을 통해 전 세계에 내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 지금부터 작곡을 배워야 실용음악과로 유명한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감격한 엄마는 아들의 두손을 맞잡았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런데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작곡 레슨을 받기보다는 두리고에서 입시를 준비해 서울대로 진학하는 게 더 좋아. 내일 두리고 입시 전문학원을 찾아보자.”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두리고? 거긴 자사고잖아?”
엄마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쓰다듬었다.
“거기에 가야 네가 덜 싸우고 덜 상처받고 행복해질 수 있어.”
5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다가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고개를 흔드는 이상행동을 반복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는 아들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원인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던 학원 숙제였다. 아들은 생후 29개월부터 한글을 읽더니 4살부터는 구구단을 외웠다. 저명한 영재교육 전문기관은 아들을 영재로 판정했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고작 숙제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엄마는 이 모든 게 너를 위한 거라며 아들을 다그쳤지만, 아들의 이상행동은 점점 심해졌다.
엄마는 2등이 1등으로 올라서려는 의지마저 꺾어 놓을 만큼 큰 초격차만이 아들을 경쟁에서 해방해 줄 거로 믿었다. 엄마는 학창 시절에 전교 1등을 하는 친구보다 반에서 고작 자기보다 1등 앞선 친구를 더 질투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전교 1등인 친구는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엄마는 자기 집보다 더 비싼 아파트로 이사 가는 이웃에 배 아픈 적은 있어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배 아픈 적은 없었다. 이 회장은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기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도 넘을 수 없을 만큼 부자이니까.
엄마는 아들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면 누구도 아들과 경쟁하려 들지 않을 테고, 아들도 경쟁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없으리라고 믿었다. 아들에겐 그만한 자질도 있어 보였다. 아들은 취학 전부터 영어ꞏ수학 선행학습 학원은 물론 수영, 태권도, 미술, 피아노 등 예체능 학원까지 섭렵했다. 엄마의 초격차 전략은 처음엔 통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다른 학생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학업 성적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같은 반 학부모들은 엄마에게 비결을 물으며 부러워할 뿐 아들을 질투하진 않았다.
하지만 초격차 전략은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을 잃었다. 아득해 보였던 아들과 다른 학생들 사이의 학습격차는 불과 한학기 만에 상당 부분 메워졌다. 아들은 2학년으로 올라간 뒤에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지만 1학년 때처럼 압도적인 기세를 보여주진 못했다. 엄마에게 초격차 비결을 묻던 학부모들은 은근슬쩍 비웃음을 흘렸다. 엄마는 초격차 유지에 집착하며 아들의 선행학습 강도를 높였다. 그럴수록 아들은 점점 더 무기력해졌고, 다른 학생과의 학습격차가 좁혀지는 속도도 빨라졌다.
의사는 엄마에게 “몸이 힘들면 호기심이 떨어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진다”며 “창의력은 심심할 때 생긴다”고 조언했다. 사교육을 중단하면 아들의 학업 성적이 떨어질 거라고 불안해하던 엄마는 시민단체 ‘사교육 고민 없는 나라’(사고나)의 활동에 주목했다. 사고나는 교과 내용 축소, 수학능력시험 무력화, 수시 확대, 자율형 사립고 폐지 등을 주장하며 교육 현장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엄마는 사고나의 주장이 실현되면 아들에게 유리한 세상이 만들어지리라고 기대했다. 사교육이 사라지면, 공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다른 학생보다 똑똑한 아들이 자연스럽게 초격차를 유지하는 우등생이 될 거라고 말이다.
엄마는 사고나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며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아들은 학원을 끊은 뒤에도 초격차를 방불케 할 만큼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 학부모 사이에서 다시금 화제를 모았다. 엄마는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똑똑한 아이들을 경쟁 속에서 망치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랬던 엄마의 입에서 두리고 입시 전문학원을 찾아보자는 말이 나오자, 아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엄마는 사고나에서 활동하고 있잖아? 내가 사교육 받는 거 알려지면 사고 나!”
“작곡 레슨은 사교육이 아니니?”
아들은 엄마의 반문에 우물쭈물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엄마가 반대하는 사교육은 자식이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시키는 사교육이야. 네가 원하는 걸 배우는 데 필요한 사교육까지 반대한 적 없어.”
“나는 두리고 입학을 원한 적이 없는데? 진짜 그러다가 사고 나면 어떡해?”
엄마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가 다시 풀어졌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지?”
“응.”
“비티에스를 만든 방시혁이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아니? 서울대야. 전공은 음악과 상관없는 미학과. 엑소를 만든 이수만은? 방시혁처럼 서울대 출신이야. 네가 좋아하는 안테나뮤직 대표 유희열도 서울대 출신인 거 알지? 그뿐일까? 네가 보는 기타 교본을 쓴 기타리스트 이정선도 서울대를 나왔어.”
“그래도 작곡을 배우려면 실용음악과에 가는 게….”
엄마가 아들의 말을 끊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 말대로 실용음악과에 갔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뭐할 건데? 매년 실용음악과를 졸업하는 학생이 몇명인 줄 아니? 걔들 몇명 빼고 다 백수 돼. 그런데 서울대를 나오면!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해도 다른 길이 생긴다니까? 든든한 보험이야. 음악 말고 다른 공부도 하니까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교양도 쌓이고. 방시혁, 이수만이 괜히 성공한 줄 아니?”
아들이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엄마…. 나는 그냥 작곡을 배우고 싶을 뿐이야.”
엄마가 아들의 두 어깨를 붙잡았다.
“두리고는 교육환경이 좋아서 서울대 진학률도 높다더라. 입학만 하면 사교육이 전혀 필요 없대. 게다가 수업과 동아리 활동만으로도 레슨 없이 악기 연주와 음악을 배울 수 있다고 들었어. 너도 그런 걸 원하지 않니?”
아들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듯 일그러졌다.
“내가 원하는 건 두리고와 서울대가 아냐.”
아들의 어깨를 붙잡은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는 꼭 두리고와 서울대를 원해야 해. 그래야 네가 원하는 걸 하면서 덜 싸우고 덜 상처받는다니까?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엄마가 말하는데 어디서 버릇없이 눈을 감고 귀를 막니?”
정진영 | 작가. 장편소설 ‘도화촌기행’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정치인’, 산문집 ‘안주잡설’을 썼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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