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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슬픈 경쟁, 아픈 교실]

등록 2023-08-30 07:17수정 2023-08-30 10:22

사교육걱정없는세상-10명 작가-한겨레 공동기획
미니픽션 10부작 ① 장강명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이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 공교육의 한 단면이 드러나면서, 교육주체들의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의 바탕에는 승자독식 사회의 그림자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실해져 가는 공교육의 이면에는 갈수록 고도화, 효율화돼 번성하는 사교육이 존재합니다.

한겨레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작가 10명과 손잡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 미니픽션 10회 연재 ‘슬픈 경쟁, 아픈 교실’을 시작합니다. 격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이번 기획에는 장강명 정진영 주원규 한은형 최영 정아은 지영 염기원 서윤빈 서유미 작가가 함께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15분 정도는 여유가 있겠구나. 아빠랑 토론 한번 해볼래?”

아버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중저음인 목소리는 차분했고 입가에 미소도 띄고 있었다. 호통을 치던 조금 전까지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가 소속 대학에서 최고의 인기 교수로 꼽히는 데에는 그런 자기연출 덕도 있을 터였다. 소년은 새삼 아버지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소년은 상대가 퍽 긴장해 있다는 사실 역시 명민하게 알아챘다. ‘아빠’라는 단어를 쓰는 게 그 증거였다. 아버지는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인물이 아니었다. 소년은 이 순간 힘의 대결에서 아버지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오늘은 수능 시험일이었고, 시험을 치르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소년이었다. 조금 있으면 고사장으로 가야 한다. 그 사실이 결정적으로 소년에게 유리했다.

“이 약이 우황청심환과 다를 게 있을까? 아빠도 대입 시험 보는 날에 우황청심환을 먹고 갔단다. 하지만 그게 옳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버지가 말했다. 식탁 위에는 주황색 연질 캡슐이 한 알 놓여 있었다. 메틸페니데이트의 단점을 극복했다는 차세대 집중력 강화제. 미군이 특수부대원이나 저격수들에게 작전 직전에 지급한다는 약. 그리고 한국에서는 수능일 아침에 먹는 용도로 한 알에 수백 만 원에 거래된다는 약. 아니, 그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다고 하는 약.

소년은 “우황청심환은 정부가 복용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었어요. 이 알약은 정부가 복용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라고 받아쳤다.

다섯 달 전 대통령이 갑자기 수능 문제를 비판했다.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께 진짜 많이 배운다”고 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학원장과 상담실장들은 올해 수능에서는 이른바 ‘킬러 문항’이 나오지 않을 테니 거기에 맞춰 공부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며 학부모들을 꾀었다.

입시 컨설턴트들은 킬러 문항을 죽인 존재라는 의미로 정부를 ‘킬러 문항 킬러’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바로 그런 정부를 죽이는 존재라며 ‘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소개했다. 사교육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고 했다. 소년은 대통령 지시 전까지 어려운 문제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법을 배웠다. 대통령 지시 이후 소년은 다섯 달 동안 덜 어려운 문제들을 빠른 시간에 많이 푸는 법을 훈련했다. 소년의 친구들도 그렇게 훈련했다. 학원에서는 어려운 문제는 나오지 않을 테니 깊게 고민하지 말고 문제풀이 기계가 되라고 했다. 실수를 덜 저지르는 것이 올해 수능의 성공 전략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차세대 집중력 강화제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올해 시험의 성패는 실수를 하지 않는데 달려 있는데, 그 약을 먹으면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대치동에서는 그 약을 구하지 못한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라는 농담이 돌았다. 약을 입수했다는 루머가 있는 학원 상담실을 찾아가 생떼를 부리다 쫓겨난 학부모도 있었다. 연줄을 동원해 약을 처방 받는다 해도 한국에서 파는 약은 약효가 3시간밖에 되지 않으므로 12시간 동안 효과를 발휘하는 미제 서방정을 구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미제 서방정은 주황색 연질 캡슐 안에 들어 있다고 했다. 교육당국은 이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적발되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처방전을 전수 조사할 거라고도 했다.

“일종의 저항권 행사라고 봐야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는 시험이잖니. 그렇다면 학생들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느냐를 봐야 하는데 이 나라가 올해는 그걸 학생이 얼마나 성격이 꼼꼼한지, 담이 큰지로 평가하겠다고 하는 거야. 이게 말이 되니? 아빠는 학생들의 실력을 제대로 보지 않겠다는 올해 시험 방향이 문제라고 생각해. 이 약을 먹는 건 최소한의 방어 수단이고.”

아버지가 말했다. 치과 의사인 어머니는 초조한 눈빛으로 남편과 소년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만큼 자기연출에 능하지 못했다. 표정이 절박해 보였다.

“경기 규칙이 잘못됐다고 반칙을 저질러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부조리한 시험이라도 부조리한 대로 다른 수험생들과 동등하게 치르겠어요.”

“순진한 생각인 거 같은데? 네가 정말 다른 수험생들과 동등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믿니? 여태까지 네가 누린 혜택들을 떠올려보렴. 너처럼 해마다 미국으로 영어캠프를 다녀올 수 있었던 학생이 네 또래 중에 몇이나 될 거 같니? 공정한 경기라는 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어. 오늘 고사장에 들어가는 수십만 명 중에는 너처럼 과외식 특강을 받으며 준비한 아이도 있고, 학원비가 없어서 학교 수업만 받아야 했던 아이도 있어. 그리고 지금 진짜 네 경쟁자라 할 만한 애들은 이 약 다 먹었을 거다.”

어머니는 “당신은 애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런 말을 해?” 하며 아버지를 타박했다. 그리고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각도로 소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들, 엄마 아빠가 너처럼 반듯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자식이 위험해지는 걸 보느니 자기가 다치겠다고 나서는 게 부모 마음이란다. 미안한 말이지만 네가 긴장하면 덤벙대는 편이잖니. 엄마는 아들이 그저 제 실력을 발휘하는 약을 준비한 게 그렇게 잘못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문제지를 빼돌린 것도 아니고 커닝페이퍼를 준비한 것도 아니야. 공황장애가 있는 수험생은 오늘 신경안정제를 먹고 시험을 치를 거고, 우울증이 있는 아이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시험을 치르겠지. 그게 왜 잘못이니? 그렇게 해서 그 아이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게 맞지 않니? 이 약 구하는 거 쉽지 않았어. 엄마를 봐서 먹어주지 않을래?”

“어머니 아버지는 나중에 이게 들통날까봐 겁나지는 않으세요?”

어이가 없어진 소년이 물었다.

“약은 어머니가 안전한 루트로 구했고 절대 들킬 리 없을 거다. 그리고 정부는 이거 못 잡아. 안 잡아. 대한민국이 자주 그래.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발표하고 다 같이 뭉개지. 그런 풍토를 이해하고 위선자가 돼야 하는 순간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사회지도층 인사가 된다, 여기서는.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아버지가 말했다. 소년은 아버지의 논리가 아니라 기세에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사이 번들번들해진 눈으로 소년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었고, 소년은 손을 뻗어 알약을 입에 넣고 컵에 담겨 있던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꿀꺽꿀꺽 물 삼키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 이해해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소년은, 이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고 생각했다.

집을 나서기 전 소년은 마지막으로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갔고, 어금니 옆에 끼워뒀던 약을 그때서야 겨우 뱉었다. 주황색 캡슐이 양변기 구멍으로 내려가는 걸 확인한 뒤 소년은 거울 속 제 모습을 보았다. 자기 눈이 아버지, 어머니의 눈과 같은 모양으로 번들거리는지 알고 싶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부를 속이고 자신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속이는 기만의 연쇄에 대해 소년은 잠시 생각했다. 이 기만의 시작은 어디인가. 나는 이 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킬러 문항 킬러 킬러 킬러가 된 소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강명 |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장편소설 ‘표백’, ‘재수사’,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소설집 ‘산 자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등을 썼다. 뜻 맞는 지인들과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www.gmeum.com)을 운영한다. 한겨레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작가상, 제주4·3평화문학상, 수림문학상,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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