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1898~1936)
“우리가 죽으면/ 일련의/ 하늘 광경을/ 가져가리. (…) 우리는 한여름의 하늘 말고는/ 어떤 기억도 없네,/ 바람으로/ 흔들린/ 검은 하늘.”(시 ‘메멘토’)
스페인 내전 초기였던 1936년 8월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새벽, 파시스트 민병대가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총살했다. 젊은 시인을 왜 죽였을까?
①유명했기 때문이다. 한때 음악가가 되려 했던 로르카는 시인이자 극작가로 젊은 나이에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죽음은 나라 안팎에 큰 충격을 줬고, 파시스트들의 백색 테러는 목표를 달성했다.
②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지역색을 노래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중앙집권을 추앙한 극우파들이 지방 곳곳을 가혹하게 탄압하던 당시, 로르카는 안달루시아와 로마족(집시)의 정서를 노래했다.
③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동정했다. 동생이 물었다. “사람들이 오빠가 공산주의자래. 정말이야?” 로르카는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사랑하는 동생아, 나는 가난한 사람들 편일 뿐이야.” 그는 좌파 정당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파시스트들이 보기에는 좌파 지식인이었을 터다.
④동성애 혐오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우익들은, 특히 파시스트들은 동성애를 극혐했다. 로르카가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야 널리 이야기된다. “로르카가 (파시스트인) 프랑코파의 희생물이 됐을 때 공화파들은 로르카의 동성애에 관해 언급하지 못하게 했다.” 스페인 전공자 안영옥 교수의 설명이다.
프랑코 독재정권(1936~1975년)은 로르카를 죽인 것으로 모자라 그의 시를 금지했다. 심지어 시인의 주검은 여태껏 행방불명 상태. 그래도 시인은 잊히지 않았고 오랜 시간 뒤 되살아났다.
“죽음의 망토는/ 침묵, 침묵에 싸여/ 슬프게/ 소리도 없이/ 생각으로만 말하며……./ 하지만 너, 마법에 걸린 매미야,/ 넌 소리를 쏟으며 죽어 간다,/ 그리고 소리와 하늘빛으로/ 변신하여 남는다. (…) 나의 가슴도 성스러운 들판에/ 매미가 되어, 푸른 하늘에 상처받고/ 노래하며 서서히 죽어 가리.”(시 ‘매미야’)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