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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 지붕 두 나라 두 종교, 그리고 평화

등록 2023-08-17 18:58수정 2023-08-18 02:06

[안희경의 이방인, 초라함의 상대성]
3 _새콤 고소한 민경씨네 훔무스

아민씨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라께서 개는 야생동물이니 집안에서 키울 수 없다고 하셨어. 고양이는 안될까?” 민경씨에게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 민경씨는 융통성 있게 생각해 달라 했고, 아민씨가 생각하는 사이 유기견보호소에서 ‘제니’를 임시보호로 데려왔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아민씨, 새벽부터 하루 5번 기도를 거르지 않는 그가 요즘 제니와 뽀뽀한다. 알라께서 개의 침을 묻히지 말라 하셨거늘.

무함마드 아민씨가 만든 훔무스(hummus). 중동과 지중해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훔무스는 병아리콩을 삶거나 찐 뒤 여러 향신료와 레몬즙, 올리브 오일 등을 넣고 함께 으깨어 만든다. 저지방 고단백 건강음식으로 채식주의자들의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하다. 아랍어로 ‘병아리콩’이란 뜻인 훔무스는 칩과 크래커, 야채를 찍어 먹거나 빵에 발라먹는 지구인의 쌈장이 되어가고 있다. 하민경 제공
무함마드 아민씨가 만든 훔무스(hummus). 중동과 지중해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훔무스는 병아리콩을 삶거나 찐 뒤 여러 향신료와 레몬즙, 올리브 오일 등을 넣고 함께 으깨어 만든다. 저지방 고단백 건강음식으로 채식주의자들의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하다. 아랍어로 ‘병아리콩’이란 뜻인 훔무스는 칩과 크래커, 야채를 찍어 먹거나 빵에 발라먹는 지구인의 쌈장이 되어가고 있다. 하민경 제공

예멘 난민 출신 쉐프 무함마드 아민(39)씨가 훔무스를 만들고, 제주 출신 국악인 하민경(42)씨가 식탁 위로 가져왔다. 상 위에 꽃 한접시가 피었다. 민경과 아민의 훔무스는 유독 고소하다.

2018년 제주로 온 예멘 난민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던 차에 제주에 사는 친구가 민경씨 이야기를 했다. 5년 전, 난민들이 한뎃잠 자는 사정을 안 민경씨가 연습실을 개방했다. 30평 공간에 30여 난민이 들고 나며 생활했고, 취재진이 진을 쳤다. 연습실은 작은 마을이 됐고, 민경씨는 아가씨 촌장 같았다. 촌장은 취재진도 마을의 일원으로 머물자며 일을 줬다. 기자들은 빗자루라도 들어야했다.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임무도 받았다.

난민들이 집처럼 머물기 바라는 민경씨 마음씀씀이였지만, 기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머리로 알던 난민을 만나기 전에는 관성에 찬 취재 매뉴얼로 가늠했을 것이다. 이주사유, 경제적 득실, 치안, 외교부담 등 재해 취재처럼. 이 속에서 난민은 ‘다름'이 부각되어야 하는 보도상품이 된다. 하지만 앉을 자리를 함께 정돈하고 마주하는 시간은 결이 다르다. 사람과 사람이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과연 난민은 우리에게 먼 존재일까? 예멘 난민이 오고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다. 후티 반군의 강제징집을 피해 탈출한 남성이 다수였기에 ‘강간범', ‘테러리스트' 라는 올무가 씌워지고 이들 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글에 22만명 넘게 서명했다. 반면에 난민이란 단어 앞에 ‘피’자를 붙인 ‘피난민’은 우리에게 익숙하다며 인도주의를 이끄는 여론도 커졌다. 민경씨의 피난처로도 후원 물품이 이어졌다. 민경씨는 ‘저는 열쇠로 문을 여는 가장 쉬운 일만 했어요. 3개월 동안 아이들과 춤 추며 놀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함께 춤 춘 아이에게 엄마가 있는지 조차 모른다. 누구의 사연도 묻지 않았다.

당시 나는 우리 동네 일을 떠올렸다. 그 보다 두해 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시에 시리아 난민 50명이 한번에 들어왔다. 그 한해 동안 370명이 왔고, 카운티(군)로 넓히면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예멘 난민까지 3261명이 정착했다. 큰애 중학교에도 시리아 소년이 왔다. 큰애 친구인 레바논계 해이다의 엄마 라나는 학교에서 교육청 소속 통역사가 올 때까지 아랍어 통역을 요청했다며 내게 막내를 부탁했다. 내게는 1980년대 소련 침공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으로 온 친구도 있기에 난민에 대한 이해가 나름 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뜨끔한 일이 생겼다. 대학입시 합격자 발표가 나던 지난 봄에야 읽어 본 큰애의 자기소개서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North Korean refugee(북한 난민)라고 적었던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낯선 말이었다. 그 표현을 작가 스가 아스코가 1958년의 기억을 적은 수필에서도 발견했다. 한국인의 말을 옮기며 ‘북쪽에서 들어온 난민'이라고 적었다. 일본어로도 난민인 것이다.

나는 ‘실향민'이라는 무해한 이름을 어떻게 얻었을까 궁금해졌다. 산업화를 추구하며 농촌 이탈을 장려했던 것처럼, ‘삼팔 따라지'라고 무시했던 이들까지 실향민이라는 이름으로 재건 인력에 통합하고자 한 것일까? 가요 ‘꿈에 본 내 고향’이 1954년에 나와 한 세대를 풍미하고 사위어 갔듯이 그 시간을 살아내야 이웃으로 자리잡는 것일까? 내가 세상물정을 알아가던 1980년대 말에는 전라도 혐오가 기승을 부렸고, 영호남 갈등이 곧 정치구도였다. 지금은 이 또한 사위었다. 이제, 정치권은 또다른 탓을 입에 물었다. ‘저들이 나의 일터를 빼앗고 세금과 건강보험을 축낸다’는 수사다. ‘저들’이라는 이주민 또한 세금을 내고, 대다수가 젊기에 ‘저들’이 내는 건강보험료가 받아가는 보험금보다 많다는 통계가 있지만 외면한다. 그 속에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저들’도 이 사회의 생산과 소비를 함께 지탱하는데, 깃발에 휘둘려 혐오의 감정을 끌어 올리는 우리는 누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일까?

예멘 난민 신청자 484명 중 지금껏 3명만 난민 인정을 받고 325명이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이들은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원주민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일한다. 낮은 급료, 단순노동에 멸시와 편견으로 나아질 미래조차 보이지 않아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난민 신청을 철회하고 독일로 간 이의 소식을 들어보면 독일은 언어와 기술교육을 받게 해 삶의 질이 계속 나아질 기회를 주고 있다. 젊은 노동력을 활용하는 독일식 경제진흥책이다. 전쟁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 기후위기 속에서 대규모 이주가 시작된 지 30년이 흘렀다.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뒤 멕시코 농민은 미국으로 몰려갔고, 사하라사막 이남은 연이은 가뭄과 열파로 비어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2050년까지 2억명 넘는 기후난민이 나올 거라 했다.

나는 이주의 속도가 가속화된 오늘, 갈등을 해소하는 평화작동법을 아민과 민경의 일상에서 보았다. 모두가 사용할 만한 관계의 묘책이다. 그들을 제주에 있는 예멘 음식점 ‘아살람’에서 만났다. ‘아살람’은 아랍어로 평화라고 한다. 민경과 아민이 주인이다. 이들은 2019년 봄 혼례를 올렸다.

예멘인 남편과 한국인 부인의 살아가는 마음에 대해 듣고자 했기에 나는 민경씨에게 어깃장 놓는 질문부터 했다. 마음은 좋을 때도 보이지만 싫을 때,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까지 훅하고 드러나기에 나는 ‘결혼해서 참 좋다’는 민경씨에게 싸운 적도 없냐고 물었다. 한번도 안 싸웠다고 했다. 남편이 싸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갈려도, ‘그럼 둘 다 시키자!’고 하는 사람이라고. 아민씨는 쉬이 흑백논리에서 벗어난다. 언어장벽이 있어 언쟁을 포기하는 건 아니냐고도 물었더니, 정말 잘 통한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한국사람 중에 대화가 안되는 사람들이 제게 진짜 많았어요.”

민경씨가 개를 키우고 싶다고 하자, 아민씨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라께서 개는 야생동물이니 집안에서 키울 수 없다고 하셨어. 고양이는 안될까?” 민경씨에게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 민경씨는 융통성 있게 생각해 달라 했고, 아민씨가 생각하는 사이 유기견보호소에서 ‘제니’를 임시보호로 데려왔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아민씨, 새벽부터 하루 5번 기도를 거르지 않는 그가 요즘 제니와 뽀뽀한다. 알라께서 개의 침을 묻히지 말라 하셨거늘.

민경씨에게 계획을 물었다.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시험관 시술이 잘 안돼 포기했다가 다시 병원 상담을 잡았다고. 아민씨는 ‘전쟁 속에 홀로 남은 아이가 많으니 우리가 키우자’며 다른 길도 제시했다. 나는 차별당할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민경씨가 환하게 답했다. “여기 예멘 애들 모두 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요. 북초등학교에서는 이번에 전교회장도 됐는 걸요. 사회성이 굉장히 좋다는 거잖아요. 걱정하지 않아요.”

대화를 마칠 즈음 한 남성이 들어왔다. 밀크티 두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아민을 찾았다. 고향 사람을 만나고파 온 이였다. 계산대 옆에는 예멘 난민들이 파는 제품과 유기견 단체를 후원하는 함이 놓여있다. 그중 한 문구에 눈길이 머물었다. ‘예멘 난민 소녀 “나디아”는 4명의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자립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디아의 가방 Hand Made’’ 나디아의 아살람을 빌며 조금 보태고 그곳을 나왔다. 오후의 볕이 담벼락을 오르고 있었다.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대담집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담 <어크로스 페미니즘>, 문명의 현재와 이를 만들어온 개인의 마음 운용 실체까지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지성 29인과의 대담 3부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대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최재천의 공부>,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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