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5월28일부터 6월1일까지 닷새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전에 없이 거대한 축제 마당이 펼쳐졌다. 민족문화의 계승과 대학생들의 국학에 대한 관심 고취라는 명분 아래 열린 축제 ‘국풍81’이다. 한국신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방송(KBS)이 주관했으나, 사실상 정부가 주도한 관제 축제였다.
축제 개막 전날인 5월27일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 전남도청을 지키던 시민군이 계엄군에 진압된 지 꼭 1년 되는 날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1주기를 앞두고 학원가에서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신군부에 맞서는 시위를 준비 중이었다. 이에 허문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학원가의 저항을 약화하고 대학생과 국민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대규모 축제를 기획했다. 허문도는 언론 통폐합으로 언론통제를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국풍81’에선 전국 190여개 대학에서 참가한 대학생 6000여명과 연예인·민속인 등이 크고 작은 공연을 벌였다. 가요제와 연극제는 물론 농악, 탈춤, 줄다리기, 국궁 등 전통문화 행사도 펼쳤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신중현과 뮤직파워,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김창완 등 당대 인기 가수들이 대거 출연했다. 허문도는 저항의 상징이던 가수 김민기와 시인 김지하도 참여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주최 쪽은 연인원 1000만명이 축제에 다녀간 것으로 집계했다.
정부는 크게 성공한 축제로 자축했으나, 그렇다고 5·18 민주화운동이 지워질 리 만무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총칼과 탱크로 짓밟은 신군부의 만행을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았다. 전두환 일당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케이(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를 두고 ‘국풍81’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두 행사의 성격은 사뭇 다르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잘못을 정부 주도의 화려한 문화 행사로 뒤덮으려 했다는 점이 판박이처럼 닮아서다. 정부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이 케이팝 공연을 보며 즐거워했다는 점을 내세워 성공적인 피날레라고 자화자찬하지만, 그렇다고 잼버리 파행 사태가 사라지진 않는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이 필요한 때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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