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 차단을 위해 (예금액) 전액 지급보장으로 전환하는 것도 올바른 해결 방안은 아니다. 사전적 위험관리라는 예보 제도의 역할에 차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즉 전액 보장 아래서 예금자는 자신의 예금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금융사 감시 유인이 사라지고 오히려 고금리를 요구해, 금융사의 고위험추구라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게 된다. 한도증액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예금자 보호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지난 3월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예금 대량인출)으로 파산했고 그 여파가 미국 중소형 지역은행과 유럽의 크레디스위스은행 파산 등으로 이어졌다. 한편 국내에서는 지난달 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이 치솟아 새마을금고가 뱅크런 위기에 휩싸였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3월부터 금융위원회, 업계, 전문가 등으로 ‘예금자보호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예금자보호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현재 국내 금융사는 보호예금 등의 평잔에 은행은 0.08%, 증권사·종금사·보험사는 각각 0.15%, 저축은행은 0.40%의 예보료를 매년 적립한다. 그 대가로 예보는 유사시 금융사별로 고객 1인당 5천만원 한도로 원리금 합계액 지급을 보장한다. 티에프 논의는 두가지를 포함하는데, 첫째는 연금저축, 사고보험금,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에 일반예금과 별도의 한도(5천만원)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둘째는 금융사별 개인 한도를 1억원으로 증액하고 예금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이다. 별도 한도에 관해서는 지난 7일 금융위가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마쳤고, 티에프는 전체 논의 결과를 조만간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우선, 연금저축 등에 별도 한도를 적용하는 방안은 상품의 경쟁력 제고 효과가 기대되나, 예금보험을 배경으로 판매확대 경쟁 심화 가능성도 우려된다.
다음, 한도증액은 예금자 보호 일부 확대가 기대되나 예보제도의 바람직한 개선 방향으로 보기는 어렵다. 예보제도는 금융시장 불안정에서 예금자를 보호하는 역할과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 특히 고위험추구 행위를 제어하는 사전적 위험관리 역할까지 두가지를 목표로 한다. 예금자 보호 관련해서 요즘 디지털 경제에서 에스엔에스(SNS)로 소문이 빠르게 확산하고 스마트뱅킹으로 자금이체가 빛의 속도로 이뤄지면서 뱅크런 위험이 증가하는데, 이를 막기 위한 한도증액 효과는 제한적일 뿐이다. 정보와 금리에 민감한 비부보 및 한도 초과 예금자들이 뱅크런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뱅크런 차단을 위해 전액 지급보장으로 전환하는 것도 올바른 해결 방안은 아니다. 전액보장은 사전적 위험관리라는 예보제도의 두번째 역할에 차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즉 전액보장 아래서 예금자는 자신의 예금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금융사 감시 유인이 사라지고 오히려 고금리를 요구해, 금융사의 고위험추구라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게 된다. 한도증액도 마찬가지인데, 보호한도가 늘어나면서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 3월12일,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이후 뱅크런이 확산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모든 예금에 대해 포괄적 보험과 전액보장’을 약속했다. 25만달러라는 보호예금 법상 한도를 파기하고 모든 예금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상 한도 파기는 예보제도의 핵심인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열흘 뒤 ‘포괄적 보장은 없고 예금보호 관련 어느 것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정정했다. 만약 이번에 미국이 법상 한도를 파기했더라면 예보제도는 신뢰를 잃고 향후 전액보장만이 뱅크런을 막을 수 있는 막다른 상황에 부닥칠 뻔했다. 옐런 장관의 정정 발언이 현명했던 이유다.
한국에서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2천만원이던 보호한도를 전액보장으로 변경한 적이 있었다. 이는 당시 불안정한 금융시장 수습을 위한 한시적 조치였고 이듬해 8월 원상복귀했다. 그리고 지난달 5일 화도새마을금고와의 합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남양주동부새마을금고에서 뱅크런이 발생했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정부 차원의 모든 조치가 이뤄질 것이며, 새마을금고 예금자들의 재산상 손실이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새마을금고 예금에 대한 전액보장 약속으로 읽혀 사태 진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금고중앙회의 5천만원 보호한도는 의미가 퇴색됐고 전액보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기에, 최근 금고의 고금리 특판상품 출시 소식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알려준다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울음일까 우려된다.
이제 한도증액의 비용과 편익 배분을 살펴보자. 우선 한도증액의 수혜자로 보이는 보호예금자는 한도증액에 따른 예보료 인상 부담으로 예금금리 하락을 감수해야 하고 사후에 한도증액의 편익을 얻는다. 비보호예금자는 직접적인 변화가 없다. 한편 금융사는 예보료 인상분을 보호예금자에게 떠넘겨 직접적인 부담에서 벗어난다. 다만 한도증액으로 금융사 자산운용에 대한 시장의 감시가 약화해 고위험자산 운용 확대가 예상되는데, 이는 금융사에 이득이다. 성공 때 이득은 해당 금융사 차지이나 실패 때 손실은 동일 권역 내 금융사들 간에 분담돼 결국 모든 예금자의 부담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도증액보다 오히려 금융사의 위험추구 억제가 절실한데, 대안으로 세가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는 자본금 추가 예치 요구다. 금융당국은 단기적으로 배당을 줄여 자본금을 더 쌓도록 요구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자본금 추가 예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둘째, 금융사 파산 때 자산 가치를 보호예금자와 비보호예금자로 나눠 배분하는 방식은 사전적으로 예금자 행태 및 금융사 자산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배분 방식으로는 비례분할 방식과 보호예금 우선변제 방식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자를 택하고 있다. 이를 후자로 전환해 보호예금자를 우선 변제하면, 비보호예금자의 금융사 감시가 강화돼 금융사 위험추구 유인을 감소시킬 수 있다.
셋째, 차등보험료율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다. 예보는 매년 권역별로 금융사의 경영 및 재무상황 등을 평가하고 예보료율에 반영해 보험료를 차등화한다. 다만 예보법(제30조의2)에서 개별 금융사 차등평가등급 등 요율 관련 사항의 일반공개를 금지하고 있어 제도 운용의 실효성이 낮다. 따라서 평가등급을 공개해 금융사 위험추구 유인을 감소시켜야 한다. 이는 예보가 추구하는 사전적 위험관리자 기능 구현의 첩경이 될 것이다.
예금자보호제도 개선은 뱅크런 예방 자체보다 금융사들의 위험추구를 억제하여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뱅크런은 금융시장 불안정 신호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