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집행을 앞두고 있는 ‘주방 만게츠’에서 튀긴 돈가스. 농성 탓에 주방기구가 열악하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필자 제공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한명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주방의 열기가 예사롭지 않다. 곳곳에 철근이 덧대어 있어 가뜩이나 좁은 주방이 더 번잡스럽다. 반밖에 열리지 않는 냉장고 사이로 두껍게 썰린 고기가 쟁반에 담겨 나오고 약간의 칼질이 더해진다. 너무 과하지 않게, 얇게 펴는 것이 아니고 부드러워질 정도로만. 스테인리스 보울에 달걀과 밀가루 약간을 넣고 핏줄 세워가며 치댄다. 두꺼운 고기는 달걀 물 거쳐 미리 준비한 빵가루 그릇에 옮겨지더니 곱게 옷을 입었다.
“손이 멋대로여서 큰일이에요”
이자카야의 주방장으로 10년을 일하며 휴가 한번 제대로 떠난 적 없는 그이의 손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가게의 운명과 함께 멈춰 선 지 일년이 지났다. 오래간만에 주방을 맡은 그이가 손이 옛날 같지 않다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자영업자의 주방은 집안의 그것과는 다른 날것의 환경이다. 요리사의 안전은 숙련된 노동에 기대며 가정집 화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불은 일하는 내내 활활 솟구친다. 손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후앙의 흡입력은 냄새와 함께 에어컨, 선풍기 바람도 빨아들인다. 주방에 냉기가 닿는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빠르고 맛있게. 두가지에 초점을 맞춘 기기와 그걸 다루기 위한 최적의 동선, 그 사이에 재개발이 끼어버렸고 이내 노동은 멈췄다. 지난 세월 베인 감각 따라 움직이다가도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근에 손이 막혀 멈추기를 여러번이다. 명동 최후의 재개발지역이라 불리는 명동재개발2지구에 위치한 ‘주방 만게츠’의 풍경이다.
튀김기를 120도에 맞춘다. 튀김옷을 입은 고기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넣는다. 초벌은 요란하지 않다. 자글자글거리며 기포가 오른다. 알람이 울리면 고기를 꺼내 잠시 식힌다. 그 사이 튀김기의 온도는 170도로 맞췄다. 다시 알람이 울리며 끓는 기름에 튀김이 들어간다. 이제 익숙한 소리가 들리고, 잘 익은 돼지고기와 튀김옷의 기름진 냄새가 가게를 가득 채운다. 잘 튀긴, 두꺼운 돈가스를 조심스럽게 썰어낸다. 소금에 찍은 한 점은 흰쌀밥에 곁들이자. 나는 소금파이지만 소스에 찍는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아무렴 취향인걸. 목이 막히면 장국을 먹자. 아니, 그보다는 생맥주가 좋겠다. 그야말로 와구와구 먹을 수 있다. 뜨거울 때 접시를 비우는 게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재개발이 아니었다면, 가게에서 일식 돈가스를 튀겨 손님 대접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밤낮없이 가게를 운영하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기술을 연마했다. 그렇게 열정을 뽐낸 것도 농성을 시작하며 옛일이 되었다.
명동재개발2지구에는 사연 많은 9개의 가게가 상가세입자 대책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명동성당 바로 앞,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명동거리를 지킨 상인들이다. 관광객이 대부분인 화려한 명동거리가 아닌 오래전 정취를 품고 주변 직장인들 대상으로 자리를 지키던 소박한 골목을 지켜온 사람들. 명동에 대한 우리의 공동기억은 이 상인들의 노동에 기대고 있다. 재개발은 그 공동기억을 손쉽게 삭제한다. 그것을 복구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은 시행사나 행정에 청구되지 않는다.
가게와 골목이 역사가 되기까지,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실력 외에도 너무 많은 운을 필요로 한다. 너무 많은 개발 속에 잃어버린 레시피는 몇개일까. 돈가스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 이제는 철거민이 된 주방장의 목소리가 오래간만에 들떠있다.
명동성당 앞, 명동재개발2지구 상가세입자들의 농성장. 사연 많은 9개 가게 간판이 그려져있는 깃발이 걸려있다. 명동재개발2지구 세입자대책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