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왼쪽 둘째). 왼쪽부터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숄츠 총리,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AFP 연합뉴스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요즘 독일의 대러시아 외교정책인 동방정책(Ostpolitik)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많다. 그 근거로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지 못했고, 심지어 러시아 보복으로 심각한 국가 에너지안보 위기에 빠졌다는 점이 지적된다. 도대체 독일은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으며, 이것이 정말 동방정책이 실패한 결과일까?
우선 독일 동방정책은 세 시기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뒤 냉전 시기 기민당 정부의 동방정책은 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 대한 강한 억제와 군비 확충을 통한 국가 방어를 핵심으로 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후반부터 대외적으로 양극적 세계질서의 긴장 완화 추세, 국내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자기비판적 태도와 반성에 따른 평화, 자제, 책임, 배상 등을 주 원칙으로 삼은 독일의 특별한 외교정책이 형성됨에 따라 사민당 정부는 유명한 신동방정책(Neue Ostpolitik)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 창과 방패라는 안보 전략을 협력과 화해로 보완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각종 교류협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화해와 평화를 달성하고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익히 알려진 ‘접근을 통한 변화’ 혹은 ‘무역을 통한 변화’를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였다.
1990년 전후 동구권의 붕괴가 시작되며 독일이 통일되고, 또한 독일이 선두에 서기도 한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가 점차 가속화되었다. 독일 정부는 이제 주적이 사라졌으니 국방을 유럽연합과 나토 등 다자주의 국제기구에 외주화하며 평화를 누렸다. 문제는 나름의 야망을 품고 있었던 러시아가 나토의 동진을 자신들의 입지를 좁히는 것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는 2000년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많은 국내외 연설과 크림반도 불법 점령을 비롯한 일련의 러시아발 침공 행위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기존 가스관 대신 러시아와 직접 연결한 노르트스트림 1과 2의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로 인해 독일은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자기방어의 지렛대를 빼앗아 무장해제시켰을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서 수입해 본국의 에너지 안보에도 치명타를 입히는 결과를 낳았다.
터무니없는 이 자폭 외교의 수수께끼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심리학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농구공을 서로 주고받는 영상을 보고 특정 팀이 한 패스의 수를 세도록 요청받았는데, 참가자들이 관찰하는 과정에서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현장에 들어와 가슴을 치고 나갔는데 놀랍게도 실험 참가자의 거의 절반이 고릴라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즉, 한 행위에 심각하게 주의를 기울이면 눈앞에서 벌어진 다른 중요하고 두드러진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과거사에 책임지는 자세로 러시아를 특별히 호의적으로 대우하고, 동시에 독일 통일과 탈냉전으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감에 도취한 채 유럽연합과 나토의 동진에 가담하는 것에 몰두하느라 푸틴이 칼을 가는 것을 놓쳤다.
결론적으로 독일은 (신)동방정책 자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억제와 접근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르러서야 독일 정부는 ‘고릴라’를 직시하게 됐고, 그 반면교사로 동방정책을 포함한 외교정책의 시대전환(Zeitenwende)을 선언하였다.
한반도에도 ‘고릴라’가 있다. 잘 보면 보인다. 이 경우에는 주의해야 할 것이 그 고릴라와 싸우려는 사람은 괜히 스스로 고릴라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