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8837m, 1만1930m, 90s.
무슨 숫자들일까? 오랫동안 전인미답이었던 에베레스트의 고도,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 그리고 남극점의 위치다. 머지않아 여기에 하나의 숫자가 더해질 것 같다. ‘1.5도.’ 기후변화 대응의 마지노선이라고도 불리는 이 숫자는 아마도 수년 안에 우리 인류가 새롭게 발자국을 남길 것이 분명한 또 하나의 고지다.
기후가 끓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7월27일 “지구온난화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끓는 기후의 시대”라고 말했다. 세계기상기구(WMO)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7월은 기존 최고치(2019년 7월)를 크게 상회해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23~27년 중 최소한 한해는 산업화 대비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넘어설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에 더해진 강한 엘니뇨 현상도 기온 상승에 기여한다. 엘니뇨가 지나고 나면 기온 상승이 다소 누그러져 다시 1.5도 아래로 낮아질 확률도 높지만, 지구온난화는 계속 진행 중이므로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1.5도 고지를 완전히 정복하고야 말 것이다.
2년 전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기후 시스템의 온난화를 비롯해 지구의 대기, 해양, 빙권, 그리고 생물권이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변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에 인간활동의 영향이 “명백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명백하다”는 수학적 표현을 빌리면 99% 이상의 확률을 의미하는데 1990년 1차 보고서가 발표된 이래 30여년이 지나서야 기후변화와 인간활동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결론은 수많은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다. 다양한 방법의 관측 자료가 수집되고 기후 시스템의 메타버스, 즉, 메타어스(Meta-Earth)라고 할 수 있는 전 지구 기후모델도 이용된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인간 활동을 반영한 지구와 인간이 없는 지구를 가상공간에 구현하고 시뮬레이션한 결과, 전자는 20세기 중반부터 볼 수 있는 실제 지구의 급격한 기온 상승을 정확하게 재현했지만 후자의 경우에서는 온난화 현상이 관측되지 않았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의 책임이 오롯이 우리 인류에게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관측 결과에 따르면, 인간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과 지구 평균기온 변화의 관계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 총량의 증가와 흡사한 비율로 지구는 더워져 왔다. 산업화 이래 인류는 이산화탄소 2조4000억t 상당의 온실가스를 배출해왔고, 그동안 지구의 기온은 약 1.2도 상승했다. 0.1도 상승에 대략 2000억t꼴이니 파리협약 목표인 1.5도까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는 6000억t 정도로 어림잡을 수 있다. 이처럼 1.5도 상승까지 남겨진 온실가스 배출 가능 용량을 탄소예산이라고 한다. 탄소예산이 소진되기 전에 순 온실가스 배출량이 0이 되면(탄소중립 달성) 지구온난화는 1.5도 전에 멈추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미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제거해가면 탄소예산은 늘어나고 지구의 기온은 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다.
고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왔더니 아이가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두었다.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아이에게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고 스스로 정리하도록 가르치는 것 아닐까. 우리가 기후변화로 요동치는 세상을 바라볼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어질렀으니 우리가 치워야 한다. 파국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