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앤드루 굿맨(1943~1964), 제임스 체이니(흑인, 1943~1964), 마이클 슈워너(1939~1964).
[나는 역사다] 제임스 체이니 (1943~1964) 앤드루 굿맨 (1943~1964) 마이클 슈워너 (1939~1964)
세 사람은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고 암매장됐다, 미시시피의 발길 드문 곳에서.
미국에서 1863년에 흑인 노예가 해방되었지만 차별은 여전했다. 남부 여러 주는 흑인이 선거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꼼수를 썼다. 미시시피주가 특히 심했다. 미국은 투표인 등록을 해야 투표를 할 수 있는데, 등록을 하러 온 흑인에게 시험을 보게 하고 세금을 물리는 등 성가시게 굴었다. 등록 절차도 복잡하게 꼬아놓고 행정 처리도 오래 끌며 훼방을 놓았다.
미국 북부의 젊은 활동가들이 미시시피를 향했다. 흑인 유권자들이 단체로 투표인 등록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1964년의 ‘자유 여름’(프리덤 서머) 운동이다.
제임스 체이니는 미시시피에서 나고 자란 흑인 활동가였다. 고등학생 때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배지를 붙이고 학교에 갔다가 일주일 정학을 받은 일이 있다.
앤드루 굿맨은 뉴욕에서 온 젊은 활동가다. 진보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 캐럴린 굿맨은 노동운동가였다.
마이클 슈워너도 뉴욕 출신 유대인 활동가다. 미시시피에 도착하자마자 흑인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지 말자며 보이콧 운동을 조직하는 등, 아내 리타 슈워너와 함께 활동을 벌였다. 지역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슈워너 부부에게 해코지할 기회를 노렸다.
1964년 7월21일, 체이니와 굿맨과 슈워너 세 사람이 미시시피에서 실종됐다. 백인우월주의 무장단체 큐클럭스클랜(KKK)이 이들을 납치했다. 연방수사국(FBI)은 세 사람을 찾아나섰고, 온 미국이 이 뉴스로 들썩였다. “뉴욕에서 온 백인 활동가가 실종된 일은 비극이다. 그런데 미시시피의 흑인 체이니가 혼자 실종되었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리타 슈워너는 지적했다.
세 사람의 주검이 발견된 날이 8월4일이다. 용의자 큐클럭스클랜 단원들을 붙잡아 재판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이 지역의 유지들이었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에 수십년이 걸렸다. 마지막 한 사람 에드거 레이 킬런은 2005년에야 제대로 재판받고 감옥에 들어가 죽었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