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자살과 불안은 한국 교육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준다. 교권이 이처럼 바닥에 떨어진 근본 원인은 한국의 교사들이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직업군 중에서 정치적 권리를 제한받는 수준을 넘어서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는 직업은 교사(와 공무원)밖에 없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교사들이 지난 7월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7·29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서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교육 지옥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참혹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살인적인 불볕더위 속에 모인 수만명 교사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겠다. 23살, 젊은 교사의 죽음 앞에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사건을 계기로 교육이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교권 붕괴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붕괴의 실상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교사의 99%가 교권 침해를 경험했다고 하고, 93%가 학생 지도 중에 학대 신고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교사의 87%가 최근 1년간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했다고 하고, 27%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 교사들은 학부모 갑질과 악성 민원, 아동학대법 신고를 두려워하며 ‘전시 간호사 수준의 스트레스’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교사의 자살이 보여주는 것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고, 교권의 붕괴만도 아니다. 그것은 곧 교육의 죽음이다. 한국 교육이 사망했음을 알리는 부고다.
교사의 자살이 드러낸 것은 교권의 붕괴를 넘어 교육의 총체적 난맥상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교사에 대한 보호 강화라는 소극적 정책이나, 학생인권조례 폐지 따위의 퇴행적 조치로 해결될 수 없다. 이제 사태의 본질을 보아야 한다. 교권 붕괴의 뿌리를 더듬어야 한다.
교권이 바닥에 떨어진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교사들이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없고,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으며, 피선거권도 없는 정치적 금치산자라는 사실―이것이 핵심 문제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민주주의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이자,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한국의 교사만은 민주주의의 변방에서 여전히 ‘정치적 천민’ 상태에 놓여 있다. 시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무권리 상태는 사회적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교육적 무력감으로 전이된다. 사실 교권의 붕괴는 지난 수십년간 교육계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무력감이 불러온 필연적 결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대다수 국가에서 교사들은 중요한 정치 세력으로서 막강한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국회 내 영향력이 상당하다. 국회의원 중 교사 비중이 핀란드의 경우 20%나 된다. 독일도 15%이며 오이시디 평균은 10% 정도이다. 대체로 국가의 선진성과 교사의 대표성은 비례한다. 선진국일수록 의회에 많은 교사가 앉아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의회에 교사가 한 명도 없다는 ―과거의 교사가 2명 있을 뿐이다―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왜 선진국에서는 교사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는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대규모의 지식인 집단이고, 그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윤리성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가치와 의미, 윤리와 도덕이 실종된 시대에 교사 집단의 지성과 윤리성은 더욱 크게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교사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초라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박정희 군사정권 때문이다. 1963년 박정희가 박탈해버린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이승만 독재의 정치적 동원으로부터 교사(와 공무원)를 보호하기 위해 1960년 민주당 정부가 만든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을 박정희는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 박탈’의 빌미로 악용한 것이다. ‘중립 의무’를 내세워 ‘참여 권리’를 빼앗았다. 이후 한국의 교사들은 무려 60년 동안 ‘정치적 중립 의무’의 덫에 걸려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세계가 경탄하는 ‘케이(K)민주주의’의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서성대는 마지막 정치 천민이 되었다.
교사는 국가의 보호 대상이 아니고, 정치적 금치산자도 아니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로서 국가 발전을 견인하고 사회 진보를 주도하는 지식인이다. 교사는 또한 교육개혁의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제 정치적 중립 의무라는 낡은 굴레를 떨치고 나와, 성숙한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의무를 자각해야 한다. 요컨대, 교권 회복을 넘어 정치적 시민권을 복원해야 한다.
교사의 교권 회복이 교육의 무너진 육신을 추스르는 것이라면, 교사의 시민권 복원은 교육의 빼앗긴 영혼을 되찾는 것이다. 교권 회복을 넘어 시민권 회복을 이룸으로써 죽은 교육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