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를 때면, 뜨거운 땅 밑 맨홀에 들어갔다가 훅 끼친 유독가스에 질식한 노동자들을 생각해본다. 2016년 7월 제주의 맨홀에서 인부 2명이 질식해 숨졌고, 8월에는 충북 청주의 정화조에서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2022년 6월에도 대구에서 맨홀을 청소하던 인부 2명이 질식해 숨졌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동안 밀폐 공간 질식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348명에 이른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165명이 사망했다. 정화조, 맨홀 등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7월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이러한 질식사에 대한 예방 조처로 정부는 “첫째, 위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관리감독자는 밀폐 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 안전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 셋째, 근로자는 밀폐 공간 내부의 공기 상태가 안전한지 확인되지 않았다면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안내한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한여름 맨홀 안이 떠올랐다. 한계가 분명한 몸뚱아리를 가진 인간의 일을 기술이 대체해 준다면, 그 일이 가장 필요한 곳은 일하다가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현장일 것이다. 경기도 고양에서 7월에 열린 ‘국제안전보건전시회’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까닭이다.
인공지능 시대라는 2023년, 현장의 노동자를 위한 기술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포스코디엑스(DX)가 선보인 ‘스마트 세이프티 볼’은 작은 야구공 모양이다. 맨홀 등 밀폐 작업 공간에 인간이 들어가기 전에 이 공을 내려보내면 유독가스를 감지할 수 있다.
전국 8만여개의 통신 맨홀을 관리해야 하는 에스케이텔레콤(SKT)은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기지국 철탑 점검용 인공지능 드론, 철도 작업자를 위한 열차 접근 경보 시스템 등과 함께 네발 달린 영상관제로봇을 선보였다. 유해가스를 탐지하고 관제 시스템과 연결된 이 기기는 상반기 기준 255대가 현장에 투입됐다.
경북대 통계학과와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9년에 낸 ‘산업안전보건 실태조사로 본 산업재해 예방투자 및 산재로 인한 지출비용의 효과성 분석’ 보고서를 보면, 규모가 큰 제조업, 서비스업 사업체가 안전투자비용을 늘릴수록 사고율이 낮게 나타났다. 기술은 진보했고 이제 투자할 시간이다.
임지선 빅테크팀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