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닥은 전날보다 1.87% 하락한 883.79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김진화 | 연쇄창업가
혁신을 이야기할 때, 특히나 ‘궁서체’로 그것의 경제적 의미와 본질을 논할 때, 좀처럼 거르고 지나치기 어려운 이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다. “우편마차를 아무리 길게 연결해도 기차가 되지 않는다”는 비유는 정말이지 찰떡같다. 길게 이어 붙인 우편마차는 언뜻 보면 열차처럼 보일 순 있지만, 그것은 철도 혁명과 무관하다. 너무 뻔한 얘기지만, 그가 굳이 비유까지 해가며 역설하고 이후 많은 이가 인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뻔하지만 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는 ‘꼬리가 개를 흔드는’ 본말전도 상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발명 그 자체보다는 사회적 배치와 연결, 그것을 통한 시장과 관계의 창출 등 새로운 가치의 그물망을 생성하는 게 혁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휴대폰이 등장했을 때 그것은 마치 우편마차를 연결한 열차 같은 것이었다. 이동하며 쓸 수 있는 전화기는 엄청난 편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이 가져온 변화가 파괴적이었다고까지 할 수는 없다. 하드웨어가 발전하면서 크기가 작아지고 화면은 커지고, 사진도 찍고 다마고치도 키울 수 있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편마차에 증기기관을 단 것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 ‘휴대하며 사용하는 컴퓨터’가 되었을 때, 나아가 애플리케이션 네트워크가 등장했을 때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는, 철도 혁명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노키아는 역사 속에 남겨졌고, 애플은 역대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마찬가지로 전기차의 미래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요즘에야 잘나가고 있지만,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테슬라 주가는 주당 100달러 선까지로 폭락을 면치 못했다. 끊임없는 의구심과 비관론은 테슬라의 미래 전망에 꼬리표처럼 달라붙어왔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이는 테슬라를 그저 자동차로 보았을 때 얘기다. 전기를 동력원으로, 내연기관 대신에 모터를 구동시키는 또 다른 형태의 자동차가 아니라, ‘주행하는 자이언트 컴퓨터’라고 본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애플처럼 하드웨어를 통합한 매끄러운 운영체제를 갖추고 있는가. 기존의 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가. 메이커와 고객의 관계는 예전과 대동소이한가, 판이한가. 여기에 자율주행까지 넘보게 하는 인공지능 기술과 표준을 장악해가는 충전 네트워크까지 더해지면 사회적 배치와 연결의 재구성이라는 관점에서, 테슬라는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점하게 된다.
2차전지 관련주들이 한국 주식시장을 들었다 놨다 흔들고 있다. 이들 주식의 시가총액이 180조원에 육박하기도 했고, 전체 거래대금의 40% 이상을 차지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야말로 광풍이다. 주식 가격에는 미래가치가 반영되기 마련이지만, 이 정도 기대치를 뒷받침하려면 앞으로 전기차 시장이 배터리를 중심으로, 아니 그것의 핵심 소재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다. 전기차는 일단 오래 잘 달리고 볼 일이다. 그래서 배터리가 중요하고 그것에 핵심 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은 가치가 크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이상으로 ‘약을 파는 건’ 마치 증기기관의 실린더가 철도 혁명 시대의 중핵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약을 팔아대며 작금의 투기판을 설계한 이들에게 전기차의 미래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고 했던 괴벨스처럼, 그들 역시 말할 것이다. “나에게 재료 하나만 달라. 그것이 전기차든, 인공지능이든, 코인이든 다 띄워줄 테니.” 문제는 뒤처질까 두려워 흔들리는 마음이다.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서 숲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만 좌표 하나 정도는 마련해둘 일이다. 연결과 배치, 혁신을 팔아대며 불안감을 자극해 등을 치려는 이들에게 맞설, 쓸 만한 좌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