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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일본 신생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의 사투

등록 2023-07-25 18:42수정 2023-07-26 02:40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왼쪽 둘째)과 다리오 길 아이비엠(IBM) 수석부사장(오른쪽 둘째)이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첨단 반도체 개발 협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왼쪽 둘째)과 다리오 길 아이비엠(IBM) 수석부사장(오른쪽 둘째)이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첨단 반도체 개발 협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일본 반도체 신화의 부활에 순풍이 이는 듯하다. 일본은 티에스엠시(TSMC)에 이어 마이크론, 삼성, 대만 3위 파운드리 업체인 피에스엠시(PSMC) 등 유수 기업들의 자국 투자 소식에 고무됐다. 그 정점에 2나노m(1나노m=10억분의 1m) 로직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에 나선 신생기업 라피더스가 있다. 이제 막 닻을 올린 라피더스호가 순항하려면 세번의 파고를 헤쳐 나가야 한다.

첫째는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능력이다. 키옥시아, 소니, 소프트뱅크, 덴소, 도요타, 일본전기(NEC), 일본전신전화(NTT), 미쓰비시유에프제이(UFJ)은행 등 8곳이 73억엔을 출자해 만든 라피더스는 엘피다, 아스프라, 제이올레드(JOLED) 등 정부 주도 아래 국내기업을 모아 첨단산업을 키우려던 실패 사례의 데자뷔 아니냐는 냉담한 반응에 직면했다. 이에 경제산업성은 자국 반도체 소재나 장비의 강점을 토대로 2나노 로직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아이비엠(IBM·미국), 아이멕(IMEC·벨기에), 에이에스엠엘(ASML·네덜란드) 등 해외 첨단 연구소·기업과의 국제협력을 앞세웠다. 하지만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렵고 책임 소재도 모호했던 예전의 폐해를 답습할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디(D)램 품질보증 기간 25년을 자랑하던 기술지상주의는 경영으로 승부수를 띄운 한국에 무너졌다. 히타치는 2000년 트레센티테크놀로지를 세워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2005년 르네사스에 흡수됐다. 그 트레센티의 사장이 현 라피더스 고이케 사장이다.

두번째 파고는 양산기술 확보다. 라피더스는 2025년 2나노 로직 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 2027년 양산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장은 40나노에서 멈춘 일본의 반도체 미세화 기술이 2나노를 성공시키는 ‘파괴적 혁신’을 선보일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보낸다. 티에스엠시도 삼성도 무수한 시행착오와 사람을 갈아 넣은 ‘노오오력’에 힘입어 핀펫(FIN-FET)에서 지에이에이(GAA) 방식으로 왔고 지금도 수율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반도체 소재·장비 강국이라도 이런 축적의 힘 없이는 양산에 이를 수 없다. 고숙련 인재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티에스엠시 구마모토 공장은 약 1700명이 필요한데 특히 장비와 공정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 티에스엠시가 미국 애리조나 공장 가동을 1년 미룬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은 고급 설계인력 확보를 위해 다급히 인도로 달려갔으나 원활한 인재 공급까지는 장시간을 요한다.

마지막 파고는 수익성 확보다. 애초 티에스엠시나 삼성에 도전장을 내밀겠다던 야심은 어느새 이들과의 경쟁을 피해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승부한다는 소심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파운드리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면서도 대규모 설비투자를 요하는 초자본집약적인 사업이다. 대대적인 선점 투자의 치킨게임 결과 현재 두 기업만 살아남았다. 티에스엠시의 경우 500여 팹리스(설계전문기업)로부터 월 130만매를 위탁생산한다. 라피더스에 필요한 투자액은 최대 7조엔으로, 일본 정부가 그간 지원한 3300억엔으로는 태부족이다. 그러나 7조엔을 다 쏟아부어도 라피더스의 생산능력은 월 3만~4만매 정도다. 라틴어의 ‘빠르다’를 뜻하는 어원의 사명답게 라피더스는 스피드로 승부할 요량이다. 수요자가 사양만 얘기하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설계부터 패키징까지 기간(TAT)을 단축하는 ‘단TAT’ 방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2나노 양산에 성공하고 고객을 확보해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자선사업체가 되거나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다.

라피더스의 항해가 불안해 보이기는 하나 우리에겐 아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일본은 지금 ‘보호주의 진영화’ 시대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반도체왕국 일본을 견제하고자 한국을 밀었던 미국이, 중국은 물론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한국과 대만에 첨단 반도체를 의존할 수 없게 되자 이제 일본을 돕고 나섰다. 미국이 티에스엠시와 삼성을 불러들여도 자국 기업 인텔이나 마이크론이 족히 크고 나면 또 누구를 겨누게 될까. 보호주의 진영 안에서조차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고 강자만 살아남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한국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이비엠도 아이멕도 없고 라피더스도 취약한 제조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는 인재 뺏기지 않기와 키우기의 성패에도 크게 좌우된다. 라피더스의 사투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보호주의 진영화 시대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리트머스 실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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