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제시 제임스 (1847~1882)
무법자 제시 제임스, 뜻밖에도 번듯한 집안의 멀쩡한 청년이었다.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 미주리주에서 농장을 경영했다. 14살이던 1861년 남북전쟁이 터지고 1863년 노예해방이 선언됐다. 노예노동에 의존하고 있던 남부 농장주들은 북군을 원망했다. 제시 제임스는 남부 게릴라가 됐다. 북군을 돕는 이들을 찾아가 죽였다. 1865년 전쟁이 북군 승리로 끝나자, 제임스와 동료들은 무법자 강도단이 됐다.
온 미국에 악명을 떨친 계기는 1873년 7월21일 열차강도 사건. 말에서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는 서부극 영화 같은 장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 발길이 뜸한 커브 구간의 선로를 헐겁게 해뒀고, 현금 수송열차가 탈선하자 들이닥쳤다. 10만달러를 노리고 벌인 범죄였지만 열차에 실린 돈은 고작 2천달러. 제시 제임스는 열차 승객들의 호주머니에서 1천달러를 터는 쩨쩨한 강도질을 했다.
은행강도로 유명했지만 할 때마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1876년 미네소타의 은행을 기습했다. 은행 직원은 저항했고, 그사이에 지역 주민들이 몰려와 총격전이 벌어졌다. 동료 강도 여럿이 죽고 제시 제임스와 형은 겨우 목숨만 건져 달아났다.
로빈 후드 같은 의적이 아니었다. 남부의 지역감정을 자극하던 존 뉴먼 에드워즈라는 언론인이 제시 제임스의 전설을 꾸며냈다고 한다. 괜찮은 집안 배경과 멀끔한 외모, 북부에서 온 핑커턴 탐정단을 따돌린 무용담 따위를 섞어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20세기 들어 그를 주인공으로 한 많은 서부극이 만들어졌다.
불운한 죽음으로 더 유명해졌다. 1882년 4월3일 암살당했다. 뒤에서 쏜 총에 머리를 맞았다. 그 얼마 전 강도단에 들어온 로버트 포드라는 총잡이 짓이었다. 포드는 큰 상을 받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살인죄로 교수형을 당할 뻔했다. 주지사의 사면으로 목숨을 건진 포드 역시 훗날 다른 총잡이의 총에 맞아 숨졌다. 제시 제임스가 죽고 얼마 뒤 미국의 개척 시대는 저물었다. 그 많던 무법자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