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수능 대비 7월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무총리실이 특급 비밀에 해당하는 보안 자료인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검토위원 관련 자료까지 가져 갔다.”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가톨릭대 교수·교육학)은 지난 10일과 18일 <한겨레>와 두 차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사교육과의 카르텔 관련성을 확인하기 위해 ‘수능 출제 인력풀’ 자료를 가져갔다는데, 이런 식이라면 누가 올해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하겠느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평가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복수의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내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성기선 교수는 2017년 10월부터 2021년 2월까지, 평가원장을 맡으며 4차례의 수능 출제를 지휘했다.
평가원은 수능 출제 또는 검토를 위해 전임강사 이상 자격을 소지한 대학 교수와 5년 이상 근무 경력이 있는 고등학교 교사를 중심으로 ‘출제 인력풀’을 관리하고 있다. 해마다 인력풀 가운데 500여명이 출제위원과 검토위원으로 위촉되어, 10월부터 한 달여간 수능 출제를 위한 합숙에 들어간다.
주로 문제 출제는 교수가, 문제가 적절한지 검토하는 것은 현직 교사들이 맡는다. 교수와 교사의 비중은 각기 55%와 45% 정도다. 관련 자료가 평가원 바깥으로 나간 것 자체가 극도로 드문 일인데다, 이들을 잠재적 카르텔 행위자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 쪽은 18일 “수능 출제·검토위원 명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부인했다.
앞서 국무총리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 배제’ 지시가 6월 수능 모의평가에서 이행되지 않은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며,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초순까지 평가원에 대한 복무감사를 벌였다. 정부는 수능 출제자(평가원)와 사교육 업체 간 이권 카르텔을 통해 킬러 문항이 유지되고 있다고 의심한다.
이에 교육부는 대형 입시학원 강사가 수능 출제 경험이 있는 현직 교사로부터 문항을 구매했다는 제보를 비롯해 모두 4건의 사교육 카르텔 의심 사안을 경찰에 수사 의뢰한 상태다. 지난 7일 관련 브리핑에서 교육부는 ‘올해 출제자가 수사에 연루됐느냐’는 질문에, “출제위원 명단은 개인정보라서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것은 수사 의뢰가 되어서 영장이 있어야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수능 출제위원 인력풀’ 외부 유출 땐 공정성 흔들려
―출제 인력풀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수능뿐 아니라 6월과 9월 모의평가 문제도 출제해야 하기 때문에 등록 인원이 꽤 많을 거다. 본 수능의 경우, 연간 500여명이 출제 및 검토에 참여하는데 3개년 연속 출제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인력풀 누리집을 보면, 수능 영역별로 출제·검토위원 정원의 10배수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 자료가 평가원 외부로 유출되면 어떤 문제가 있나.
“일단은 각 개인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닐 테니까 개인정보유출에 해당된다. 수능 출제에 누가 들어갔는지는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돼온 보안 사항이다. 만일 다른 곳으로 유출될 경우, 위원들의 평소 (강의) 성향으로 문제 출제를 유추해볼 수도 있지 않겠나. 누가 이를 책임 질 것인가. 지금 평가원장이 공석이라 방어할 사람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 교육부 장관이나 국회의원한테 요청이 들어와도 못 내준다고 하는 자료다.”
―2016년 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현직 교사가 학원 강사에게 문제를 유출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 유착관계를 들여다보려는 목적일까.
“그런 것 같다. 당시 사건 이후로 출제·검토위원이 비밀유지 서약을 위반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출제 경력 노출에 대해 하루 50만원씩 벌금도 물어야 하는 등 법적 조치가 강화됐다. 게다가 수능 출제는 1인 작업이 아니다. 예를 들어, 특정 과목에서 10명의 출제위원이 각자 문제를 만들어 오면 각 영역별 위원장 주재로 검토를 한다. 이견이 생기면 다시 문제를 만든다. 이런 과정을 계속 거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출제위원으로 들어와서 한 문제도 못 내고 간다.”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수능 출제위원을 만났다고 말하는 학원 강사들이 실제로 있지 않나.
“맞다. 그 중에는 허위·과장광고 위반 행위도 많을 거다. 근본적으로 이런 고민이 있다. 일본은 대학입학공통테스트(옛 센터시험)를 치는데, 출제위원은 1년 내내 그쪽으로 출근해서 문제를 만든다. 마지막 단계에 검토·선정위원이 들어와서 변형해서 문제를 출제한다. 우리는 이런 문제은행식으로 하기 어려운 것이 교육과정이 4~5년마다 바뀌어버리면 이전에 출제했던 것이 소용 없어진다. 비용이 많이 들고 정보 보안의 문제도 있다.”
―올해 수능에 미칠 파장은 없을까.
“대부분 출제 참여를 꺼려 할 거다. 비단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올해 수능은 워낙 주목을 받고 있어서 문제를 어떻게 내더라도 비난받을 수 있다. 어렵게 내면 대통령 지시를 왜 어겼냐고 할 거고, 쉽게 내면 ‘물수능’이란 말이 나올 거다. 수능을 다섯달도 채 안 남긴 시점인데, 모의평가 문제가 어렵다고 평가원장이 사퇴하고 평가원이 감사를 받는 것은 초유의 상황이다.”
―수능 준비에 차질이 있을 정도인가.
“9월 모의평가는 지금 출제 들어갔다. 본 수능은 10월 초에 출제·검토위원이 합숙을 위해 입소를 해야 한다. 보통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데 한달 정도 걸린다. 1주일간 출제위원들이 초안을 만들면 검토위원인 현장 교사들이 직접 시험을 쳐보면서 꼼꼼히 살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난이도 조절을 하게 된다. 2017년 지진으로 수능 연기를 겪은 이후로는, 예비로 문제를 한 세트 더 만들어야 한다. 합숙기간도 길어지고 부담도 커졌다.”
―출제위원은 언제 위촉하나.
“이런 일정에 맞추려면 대개 8월 중순 이후부터는 출제진 구성에 들어간다. 평소 인력풀을 꾸려두고 있다가, 과목별로 3배수를 먼저 추려 평가원장에게 결재를 받는다. 그 안에서 1순위, 2순위, 3순위를 정해서 접촉한다. 전 과정을 매우 공정하게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평가원장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평가원장을 새로 선임하려면 얼마나 걸리나.
“지난 7일이 공모 마감일이었다. 보통은 절차가 석달 정도 걸리는데, 아무리 서두르더라도 두달은 소요될 거다.”
―이규민 전 평가원장의 사퇴 배경이 6월 모의평가 때문이라는데.
“6월 모의평가는 수능을 앞두고 새롭게 개발한 유형의 문항을 테스트하는 기능도 있다. 또 새로운 학년이 3학년으로 진입하면 학생들의 특성이 바뀌기 때문에 이를 파악할 필요도 있다. 현재 고등학교 1, 2, 3학년이 다 똑같은 역량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수능이 상대평가로 운영되기 때문에 변별력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수능도 아니고 모의평가 때문에 평가원장이 사퇴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평가원장 재직 시기인 2019학년도 수능에서 국어문제 난도가 너무 높아 큰 논란이 됐었다.(당시 국어 31번 문항은 동서양 천문학을 다룬 지문이 나온 뒤 만유인력을 설명하는 또다른 보기 지문을 보고 결합해서 풀어야 하는 초고난도 문제가 출제돼 논란이 일었고, 결국 성기선 당시 원장이 사과했다.)
“뒷얘기를 설명하면 이렇다. 원래 수능 출제 때 검토위원들은 국어 31번의 난도가 높지 않다고 했다. 당시 지문이 EBS 수능특강 독서과목 등에 나온 지문을 활용한 것이어서 그렇게 본 것 같다. 실제 정답률이 18% 수준이었는데, 예상치는 20% 정도로 잡았었다. 오지선다형에서 18% 정답률이면 완전 킬러라고 보긴 어렵지 않겠나. 이런 문제가 나오면 언론사 기자나 전문가들이 풀어보고 어렵다고 하는데, EBS 교재에 숙달돼 있는 학생 입장에선 다를 수가 있다. 그래서 지문을 그대로 낼 수 없고 여러 지문을 연결하거나 변형한다.”
―보기 지문으로 나온 만유인력 설명은 EBS 교재에 없던 내용 아닌가.
“처음에는 없었는데 검토위원들이 너무 풀기 쉬우면 안 된다는 지적을 해서, 출제위원들이 예문을 더 들자고 한 거였다. 결과적으로 두 개 지문의 관계까지 묻다보니 난도가 높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렇다면 당시에 사과는 왜 했나.
“출제배경이 어떻든 간에 민심이 좋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가 이 문항을 포함해 평가원을 상대로 소송을 건 적이 있다. 법원 판단은 난도가 높다고 해서 공교육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난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나.
“킬러 문항이란 표현이 좀 그렇지만, 좋은 킬러와 나쁜 킬러를 구분해서 봐야 할 것 같다. 나쁜 킬러 문항은 문제를 비비 꼬아서 사교육을 통해 훈련 받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다. 교육부가 최근에 킬러 문항 예시를 들었다. 그런데 추상적 표현으로 어렵다고만 했지, 고교 교과과정을 왜 벗어난 것인지 구체적으로 짚지 못했다. 수능 문제들은 이미 수백명 규모의 현장 교사들이 이 정도면 괜찮다고 승인한 것들이어서, 문제제기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킬러가 빠지면 준킬러 문항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있다.
“보통 문제 난이도를 보면, 킬러라고 하는 초고난도 외에 고난도, 중난도, 저난도 문항이 있다. 여기에서 초고난도를 빼는데 고난도를 안 늘릴 방법이 별로 없다. 국어의 경우, 65문항까지 갔다가 시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해서 45문항으로 줄었다. 문항 수가 줄어들면 변별력을 확보하는게 더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 윤 대통령 지시 이전에도 킬러 문항을 지양해왔지만 문제는 변별을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는 얘기다.”
―EBS 교재 연계는 지금처럼 하는 게 맞나.
“2000년대 초반에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나온게 EBS 교재 연계 출제다. 이번엔 내가 질문을 하나 해보자. EBS는 공교육인가, 사교육인가? 농촌 등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기능이 있는 반면, 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부정적 영향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국어 교사가 과목 수업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해와서 가르친다고 치자. 학생들이 외면한다. 수능에 나오는 EBS 교재로 해달라고 한다. 교사가 EBS 방송 강의 틀어준다고 해서 ‘클릭 티처’ ‘마우스 티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연계율이 70%에서 현재 50%로 줄어든 거다. 그런데 지금 교육부가 이비에스 연계를 다시 강화하겠다고 한다. 넌센스 아닌가. 비문학 지문은 교과서 바깥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엉뚱한 데서 가져오면 야단 맞으니까 EBS 수능특강 교재에 의존한다. 그러다보니 그대로 낼 수는 없고 난도를 높이게 된다. 이제 이런 논의를 좀 같이 해볼 필요가 있다. 언론도 킬러 문항 문제를 사건 취재하듯이 다뤄서는 안 된다. 사교육 카르텔 이슈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일 수 있지만 그 잣대로만 수능과 사교육 문제를 보려는 건 곤란하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2차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최근 내놓았던 대책들이 그렇다는 건가.
“교육부 장관이 킬러를 빼더라도 고난도 문항을 안 늘린다고 했다. 하지만 상위권 변별을 어떻게 할 건지 답을 안 준다. 각진 동그라미,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말이다. 또 수능 난이도 조정을 위해 현장 교사 중심으로 공정수능 평가 자문위를 운영하고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도 만든다고 한다. 지금도 출제·검토위원에 운영준비팀까지 하면 800명이 합숙에 들어갈 정도로 인원이 차고 넘친다. 이미 현직 교사로 구성된 검토위원들이 수백명 있는데 또다른 현직 교사에게 문항 점검을 시킬 이유가 있나. 교육부 장관이 수능 운영 시스템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30년 된 수능 미세조정 아닌 큰 틀에서 개편 불가피
―올해로 30년 된 수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많이 해왔는데.
“처음에 평가원장 맡고 나서 황당했던 것이 수능 출제 첫번째 원칙이 ‘문제 없는 문항’ 만들기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복수정답이나 이의제기, 출제오류 가능성 없는 문항이 좋은 문제라는 거다. 두번째 원칙은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좋은 문제는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
―좀더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짚어준다면.
“수능은 오지 선다형이고 상대평가를 전제로 한다. 30년간 새로운 문제를 찾다보니, 나올 문제는 다 나왔다. 무엇보다 객관식 문항으로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평가할 수 있을까. 수능은 원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적성시험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 대학에서 학점(GPA)과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면 수능 점수가 제일 낮다. 본연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 시행과 더불어 수능 개편이 더 관심을 모은다.
“2025년에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처음으로 이 과정을 거쳐 졸업하는 학생들이 2028학년도 대입을 치른다. 지금 중학교 2학년생들이다. 교육 과정이 몸체에 해당되면 평가는 꼬리에 해당하는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매우 기이한 현상을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은 수능을 미세조정만 할 거라고 해왔는데, 학생들에게 다양한 과목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서 대입 선발제도의 큰 틀은 유지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대학에 선발권을 주자는 것인가.
“큰 틀에서 보면 신입생 선발을 국가가 할것이냐, 대학이 할 것이냐다. 과거 대학에 선발권을 줬더니 부정입학 문제가 대두되어서 국가시험으로 한 것이다. 지금은 견제 장치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고, 고교학점제가 들어서면 수능 공통과목은 자격고사화하고 절대평가해도 된다. 수능1과 수능2로 나누기로 하고, 수능1은 공통과목으로 치르고 수능2는 일반·진로·융합선택 등 선택과목 위주로 가는 방법이 있다. 다만 주관식 논서술형이 포함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학교에 ‘학원과의 경쟁서 이기라’는 식 주문 안 돼
―사교육 경감 대책의 실효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놔둬야 한다. 지난 40년간 사교육을 잡겠다는 그 어떤 정부 정책도 성공한 적이 없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명부를 바탕으로 몇년치를 분석한 결과를 보니, 입시제도가 바뀐 첫해에는 강남 8학군 학생 비중이 뚝 떨어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번째 해엔 그 비중이 확 올라간다. 무엇을 의미하냐면, 사교육을 줄이려고 입시제도를 바꾸면 첫해만 반짝 효과를 내고 1년 만에 다시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경쟁과 불안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는 공교육을 정상화한다고 하면서 학교에게 학원을 따라가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 학교는 자기 고유한 기능이 있고 입시 준비는 한 부분에 불과한데, 지금은 학원과의 경쟁에서 지고 있지 않느냐, 이기라고 하는 식이다.”
지난달 16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교육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
“교육정책과 제도, 특히 대입제도는 대단히 보수적으로 스텝을 밟아가야 한다. 자녀의 앞날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불안감이 완화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버리면 안 된다. 지금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모든 걸 다 준비하자, 이렇게 돼버린 형국이다. 국영수부터 음미체까지 모든 과목 내신 관리해서 수시도 준비하고, 그래도 불안하니까 정시도 준비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해마다 여론 조사를 실시한다. 사교육을 왜 받느냐고 물어보면 1위가 불안 심리다. 2위는 경쟁 때문에, 3위는 학교 교육을 따라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두가 교육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사회적 공론화가 쉽지 않은 분야다.
“우리나라 교육을 피로스의 승리에 빗댄다. 고대 그리스 에피로스의 왕 피로스가 로마 전차군단과 싸워서 승리를 거뒀지만 장수들을 너무 많이 잃어, 마지막 전투에서 패망했다. 실속 없는 승리, 상처뿐인 영광이다.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올인하고 있고 학생들은 전 세계 최장시간 학습노동에 시달린다. 좋은 대학에 붙어도 경쟁력이 없다. 행복하지도 않다. 학교에서 사고력을 높이고 다양한 적성에 따라 역량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나오는 시대가 아닌가. 공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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