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80% 차지한 지입차주들화물연대 결성 포철 출입문 막아정부부처 어디도 사태파악 못해대노한 노 대통령 “단호한 대응”
IMF 뒤 화물운송 착취구조 강화생존 내몰린 노동자들 행동 나서법·원칙 강조 속 정상참작할 면도열흘만에 정부 양보로 사태 종결
‘정의감 바탕한 대화와 타협’ 추구8월 재파업 나섰으나 정부가 제압이듬해 ‘업무개시명령’ 제도 도입지난해 윤석열 정부 요긴하게 써
2003년 4월30일 과천 종합청사 앞 공터에 모인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 노동자들. 류우종 기자
2003년 5월6일(화) 새벽 6시 전화가 와서 잠이 깼다. 비서실장실에서 온 전화였는데 8시까지 관저로 나오라고 한다. 가보니 권오규 정책수석이 놀란 표정으로 앉아 있고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문재인 민정수석, 정만호 비서관이 속속 도착했다. 포항에서 화물연대가 포철에 대한 운송을 거부하고 도로를 점거한 사태에 대통령이 진노한 상태였다.
이어서 9시부터 12시까지 국무회의가 열렸다. 노트북을 놓고 하는 첫 회의인데 사용이 불편했다. 화면 보랴 메모하랴 하니 오히려 토론에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국무회의 후반 노 대통령이 “5월2일부터 화물연대가 포항제철의 출입문을 화물차로 막고 시내 화물차 운행을 방해해서 도시 질서가 붕괴하고 있는데 왜 부처에서 보고하지 않느냐?”고 질책했다. 건교부, 행자부, 공정위 어디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5월7일(수) 아침 8시30분 대통령 집무실에서 화물연대 대책회의가 열렸다. 문희상, 유인태, 문재인, 권오규, 이해성, 박주현과 내가 참석했다. 전체 화물차 중에서 5대 운수회사(대한통운, 동방, 삼일, 천일, 한진) 소유가 약 6백대이고 화물연대 소속 지입차주 소유는 2500대였다. 지입차주는 분류하자면 노동자가 아니고 개인택시 비슷한 자영업자에 속하는데, 화주와 관계에서 보면 노동자성도 있는 복합적 존재다. 포철에서는 지입차주들에게 톤당 2만1500원을 지급하는데 운송대금 어음할인료가 월 60만원, 유가가 월 300만원, 그밖에 지입료 등등을 빼고 나면 지입차주들의 월 소득이 40만~6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사정이 열악했다. 화물운송의 세계에서는 대기업의 횡포가 만연하고 법으로는 1차 하청만 허용되지만 현실에서는 재하청, 재재하청이 횡행하고 있었다. 듣고 있던 유인태 정무수석이 “한국은 갑의 사회”라고 촌철살인을 날렸다.
2003년 5월9일 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 부산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300여대의 화물차를 동원해 부산시내를 저속운행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4월에 포항에 사는 지입차주 박상준(60)씨가 빚 8천만원을 비관해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 사건이 지입차주들의 뒤끓는 분노에 불씨를 던진 도화선이 됐다. 포항에서 시작한 파업은 급속히 전국으로 번져갔고, 화물연대 회원은 나날이 급증해 2만명을 넘어섰다. 화물연대는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라는 무시무시한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 파업에 들어갔다. 부산항 하역이 멈출 위기였고, 정말로 물류가 멈추고 세상이 바뀔 것 같은 대란이었다.
5월9일(금) 오전 9시 대통령 주재 수석회의에서 포항 화물연대 사건을 다시 토론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이 보고하기를 이 사건은 소관 부처가 애매하다, 산자부는 포철의 입장만 대변하면서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고 했다. 문재인 수석은 나중에 쓴 회고록 <운명>(2011)에서 이렇게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화물연대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부산항 수출입을 막아 주장을 관철하려는 방식에 화를 많이 냈다. 내게 단호한 대응을 지시했고, 군 대체인력 투입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나종일 안보보좌관과 유인태 정무수석이 조정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이전 정권에서라면 이런 사건은 국정원에서 처리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10년 누적된 문제다. 중간착취 구조가 문제이고, 어음할인료가 월 60만원이나 된다. 그리고 화물연대를 무시하고 상대해주지 않아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차제에 제도를 개선하되 법적으로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정상 참작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이 이렇게 결론내렸다. “이번 기회에 근본적, 제도적 해결책을 마련하자. 첫째 이 문제에 무조건 ‘법과 원칙’을 내세우기 어려운 면이 있다. 둘째, 지입차주들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해결책을 마련하자. 셋째, 정부 운영시스템을 바꿔 미리 위기를 감지하고 진단,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부처간 사각지대가 없어야 한다. 사회갈등의 조정기구로서 국정원을 활용하는 것에는 부정적이다. 과거 국정원이 정권안보 차원에서 미봉책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자에 관심이 없고,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다. 그러니 1)부처의 신속 대응 2)관계장관회의 3)총리실 4)청와대 이런 순서로 일을 처리해주기 바란다.”
5월11일(일) 아침 9시부터 10시30분까지 대통령이 방미 인사 겸 긴급 국무회의를 열었다. 화물연대 파업에 관해 노 대통령은 물류대란이 없도록 당부했다.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운수업계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입차주라는 복잡한 형태가 나타났다.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관계장관회의 등을 통해 우선 발등의 불을 끄고 난 뒤 제도개선을 하자”고 말했다.
이 문제를 놓고 허성관 해수부 장관은 이렇게 주장했다. “이 문제는 건설하도급, 농수산물 유통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고질적 먹이사슬 문제다. 대형 운수회사들이 아이엠에프 사태 때 핵심 역량인 트럭을 대량 처분한 것이 잘못 돼서 회사 소유 트럭이 전체 20%밖에 안 되고 해고자들이 대거 지입차주가 됐다. 부산-서울 통행료가 7만원인데 50% 심야(12시~6시)할인 받으려고 밤에 운전하니 위험하다. 1998년에는 컨테이너 당 운송료를 43만원 받았는데 과당경쟁으로 지금은 15~30% 인하됐다. 포철의 퇴직 임원, 고위직 친인척들이 운수를 담당하니 이런 먹이사슬을 타파하지 않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했다. 노 대통령은 “여기까지 온 데는 정부 책임이 있다. 그러나 양보를 강요당할 수는 없고 집단적 업무방해이므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노 대통령은 첫 미국 방문 길에 올랐다.
사태는 계속 긴박하게 돌아갔다. 5월12일(월) 아침 9시 수석회의에서 청와대 비상대책회의를 구성했다. 비서실장, 정책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이 오후 3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오전 4시에 나온 노정 합의안을 놓고 화물연대에서 찬반투표를 한다고 했다. 밤 10시15분 긴급뉴스에 부산 화물연대에서 조합원들이 투표한 결과 찬성 46%, 반대 52%로 나와 파업을 강행한다고 했다. 밤 11시10분 비서실장실에서 내일 아침 8시 다시 긴급 대책회의를 연다는 전화가 왔다.
5월13일(화) 아침 8시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노 대통령이 미국에서 새벽에 청와대로 전화했는데 연결이 안 되고 몇 차례 공전 끝에 경호실로 겨우 연결됐다고 한다. 화물연대는 해산, 귀가했는데 7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돼 업무방해죄로 구속한다고 했다. 대체인력은 없고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5월14일(수)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수석회의에서 화물연대의 위탁, 수탁과 지입차주 문제를 논의했다.
2003년 5월7일 밤 경북 포항시 호동 철강관리공단에서 운송하역노조파업타결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화물연대 파업은 하루 1500억원의 피해를 가져왔다. 제도의 희생자들인 트럭기사들이 물류를 멈추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결국 5월15일 협상이 타결됐다. 화물연대는 경유값 인하,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지입제 폐지,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가입, 노동자성 인정 등을 쟁취하고 물류대란은 끝났다. 문재인 수석은 <운명>에서 이렇게 썼다. “결국 화물연대 파업은 합의 타결됐다. 말이 합의 타결이지 사실은 정부가 두손 든 것이었다. 화물연대로선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조합원도 크게 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의감에 입각해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푸는 노무현다운 해결방식이었다. 화물연대는 8월 다시 파업을 벌였으나 정부가 제압했고, 2004년 정부는 화물자동차 운송사업법을 개정해 화물노동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게 했다. 2022년 11월 화물연대의 16일간 파업 때 윤석열 정부가 이 명령을 요긴하게 써먹었다.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한 업무개시명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지난해 11월29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관련 부서에서 직원들이 업무개시명령 송달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