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가 된 수능 국어영역의 비문학 문항. 김재욱 화백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킬러(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지적하며 콕 집어 예시로 든 것은 ‘비문학’ 지문이다. 수능에서 비문학은 독서과목을 가리킨다. 국어영역 45문항은 공통과목인 독서(1~17번)와 문학(18~34번)에서 34문항, 선택과목인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에서 각각 11문항(35~45번)으로 이루어진다. 독서는 흔히 문학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비문학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비문학 출제방향을 ‘독서의 원리와 방법에 대한 지식, 어휘력, 사실적·추론적·비판적·창의적 사고력 등의 측정’이라고 제시한다. 한마디로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력 평가다.
비문학은 이른바 ‘불국어’를 만드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왔다. 현재 수능의 이비에스(EBS) 교재 연계율은 50%인데, 동일한 지문을 그대로 내는 ‘직접연계’가 아니라 교재 속 중요 개념 등을 변형하거나 재구성해 출제하는 ‘간접연계’ 방식이다. 상대적으로 연계 체감도가 높은 문학(시·소설)에 견줘 어디서 지문이 나올지 모르는 비문학이 변별력을 가르는 역할을 맡아 온 것이다.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수학보다 사교육 관련성이 낮은 국어의 난이도를 높이기 시작한 측면도 있다.
‘환율 오버슈팅’(일시적 급등세)이나 ‘허프만부호화’(데이터전송 기술)처럼 경제나 과학, 정보·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난이도 높은 지문이 나왔고, 이 가운데 정답률이 뚝 떨어지는 일부 문항이 ‘킬러’로 지목됐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는 1등급 커트라인 원점수가 84점으로 사상 처음 90점 아래로 내려간 대표적 ‘불국어’였다. 서양 천문학과 중국 천문학에 대한 과학적·철학적 설명을 융합한 지문을 읽은 뒤, 만유인력에 대한 별도 제시문을 연계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31번 문항)가 나왔다. ‘국어시험인지, 과학시험인지 모르겠다’는 원성이 쏟아졌고 시민단체(사교육걱정없는세상)는 고교 교과과정을 벗어났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나섰다. 급기야 복수정답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결국 평가원장이 사과했다.
당시 수능이 끝난 뒤, 청와대 게시판에는 “수능 1교시를 국어 대신 한국사로 바꿔달라”는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어가 너무 어려운 탓에 다음 과목 시험에도 타격을 줄 수 있으니, 시간을 바꿔달라는 주장이었다. 오전 8시40분, 수능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접하는 문제가 바로 비문학이다.
이후 킬러 문항을 지양한다는 출제 기조가 확립됐지만 난이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킬러 문항 빈도와 지문 길이가 다소 줄어드는 변화가 있었지만, 어떤 문제가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지는 다툼의 소지가 큰 탓이다. 2021년 3월 대법원은 앞서 시민단체가 킬러 문항을 근거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선 활성화 에너지와 촉매에 관련된 비문학 지문이 출제됐다. 다만 윤 대통령이 이 지문을 문제 삼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평가원 누리집에는 연일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질문이 올라온다. 9월 모의평가부터 과목 융합형 지문은 출제가 안 되는 것인지, 비문학 지문과 이비에스 연계도가 높아지는 것인지 따위다. 속 시원한 답변이 달리지 않으면서 수험생들의 속이 타들어간다.
황보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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