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지난 뒤 국민의정부내수진작·세수확충 효과 노려신용카드 관련 규제 대거 해제길거리 발급 등 부실 터지면서GDP 19% 만큼 사용액 급감
규제 강화·출자전환·자본확충…공적자금 투입 없이 위기극복
진보개혁적 경제학자 식사자리김상조-이동걸 등 격론 벌이기도
2000년대 초 국민의정부는 내수진작과 세수확충을 위해 신용카드 관련 규제를 대거 해제해 과당경쟁이 벌어지면서 길거리 가입자 모집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에 따른 카드대란은 국민 경제의 큰 부담이 됐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 발등에 떨어진 불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카드사 부실 사태였다. 사태가 워낙 심각해 언론은 ‘카드대란’이라 불렀다. 2002년부터 연체율이 급상승하며 시작된 카드사 부실은 2003년 들어 더 심각해졌다. 당시 9개 전업 신용카드사 중 대출서비스를 하지 않던 비씨카드를 제외한 8개 신용카드사 모두 큰 적자를 기록해 부도위기에 몰렸다. 만일 카드사들이 도산하면 이들이 발행한 채권(카드채) 또는 다른 금융기관에서 빌린 채무 90조원은 변제가 불가능해지므로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과 금융시장 대혼란이 불가피했다.
카드대란은 1997년 말 터진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진 경기를 활성화하려고 국민의정부가 과도하게 규제를 완화한 데서 빚어진 결과였다. 국민의 정부는 내수를 진작해 침체한 경기를 부양하는 한편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부족한 세원을 발굴하는 일석이조의 묘수라고 생각해 1999년부터 대대적인 신용카드 장려정책을 폈다. 1999년 2월 총 여신액의 40%로 규정된 카드사 신용판매 취급 비중 규제를 폐지했고, 5월에는 월 70만원이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한도를 폐지했고, 8월에는 신용카드 사용액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했고, 2000년에는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추첨제를 시행하는 등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했다.
최대 악수는 카드사의 ‘길거리 회원모집’ 허용이었다. 카드사 간 과당경쟁이 일어나면서 길거리에 탁자를 놓고 행인들을 붙잡고 카드를 발급해주는 그야말로 무모한 행동이었다. 이런 행태의 위험성을 인식한 금융감독원이 2002년 2월과 4월 두차례에 걸쳐 길거리 모집 규제에 나섰으나,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반대로 실패했다.
나는 미국에서 유학 시절인 1978년과 교환교수로 갔던 1993년 두번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두번 모두 신청에서 발급까지 한달 이상 걸렸고, 마지막 단계로 은행 쪽에서 전화를 걸어와 이것저것 묻고 난 뒤 비로소 카드가 나왔다. 과거 조그만 잘못이라도 있으면 카드 발급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것이 신용카드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관행이었다. 그런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길거리에서 즉석 발급이라니, 몰상식, 무책임의 극치였다.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카드사 간 과당경쟁은 폭발적 신용카드 발급으로 이어졌다. 길거리에서 소득 확인 없이 카드를 발급하니 실직자, 대학생, 심지어 사망한 사람 명의로도 카드가 발급됐다. 1999년 말 4천만장 정도였던 신용카드는 정부 경기부양 의지와 신용카드사 과당경쟁 속에서 2002년 1억장 이상으로 급증했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4장 이상 신용카드를 보유한 셈이었다. 신용카드 이용액도 2000년 225조원에서 2002년 681조원으로 2년 만에 3배로 늘었고, 그 덕분에 신용카드사들은 2000년부터 흑자를 누리게 됐다.
약간의 국제비교를 해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1999년까지 국민 1인당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한국 순서였는데, 한국은 2000년 일본을 추월했고, 2001년 캐나다를 추월했으며, 2002년에는 영국마저 추월해 미국 다음으로 올라섰다. 2000~2002년 3년간 한국의 신용카드 이용액 약진은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현상이었다.
이는 분명 내수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 18세기 영국의 남해회사 거품 사건에서 보듯이 거품경제의 특징은 무한정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02년을 정점으로 카드 거품은 급속히 꺼지기 시작했다. 부작용을 우려한 정부는 2002년 3분기에 접어들면서 현금서비스 제한 등 카드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급선회함에 따라 신용카드 이용액이 급감했고 이는 소비지출 감소 및 경제성장 둔화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신용카드사들은 2000년부터 쌓아왔던 흑자를 모두 잃고도 남는 10조원 이상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카드 사용 급감은 경기후퇴에 큰 몫을 하게 됐다. 2002년에서 2003년 한해 사이 신용카드 이용액 감소분은 무려 142조원으로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19%, 민간 소비지출의 34%에 달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큰 불황을 초래할만한 규모였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은 심각한 불경기로 이어졌고, 그 수습책임은 참여정부의 몫이 됐다. 카드대란은 가계부채 누적 등 우리 경제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금과옥조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2003년 4월4일 오후 서울 금융감독원 기자실에서 신용카드사 자구대책 실행방안 발표에 참석한 8개 카드사 사장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참여정부가 취한 카드대란 대책은 부실 정리, 자본확충, 채무 만기연장 등이었다. 우선 기존 부실을 조속히 정리하고 추가 부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영업 건전화를 유도했고, 이미 발생한 부실은 카드사들이 자본확충을 통해 스스로 흡수토록 하는 한편 카드채 등에 대해서는 채권금융사들이 만기연장을 통해 카드사들의 급격한 자금경색을 막아줬다.
카드사들의 영업행태 건전화를 위해 부당한 카드회원 모집을 금지하고, 현금대출 위주 영업행태를 개선하도록 조처했다. 자본확충과 관련해서는 8개 전업카드사가 4조5천억원 증자 계획을 2003년 4월 초 확정하고 집행하기 시작했다. 은행계열 전업카드사(국민카드, 외환카드, 우리카드)의 경우에는 증자만으로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모은행에 흡수·합병토록 했다. 그리고 부실이 가장 크고 심각했던 엘지(LG)카드는 모그룹인 엘지그룹의 자금지원과 함께 채권은행이 3조5천억원의 채권을 출자전환해 인수했다. 삼성카드는 삼성캐피탈과 합병하면서 1조5천억원을 증자해 자본여력을 대폭 확충했다. 이러한 경영개선 조처와 부실 처리 결과 카드사들의 경영수지도 빠르게 개선됐다. 2003년 하반기 7조7천억원에 달했던 카드업계 손실은 2004년 상반기 1조5천억원으로 대폭 감소했고 2004년 하반기에는 1700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이로써 2004년 초 카드대란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고 2004년 말에 이르러 경영개선과 자본여력 확충으로 사태는 마무리됐다.
참여정부의 카드 대책에 진보 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장하성(문재인 정부 초대 정책실장)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2003.4.14.)에서 실패한 회사는 문 닫게 하고,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음을 비판했다. 예를 들어 삼성카드의 부실 책임은 삼성그룹 총수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인터뷰를 노무현 대통령이 읽고 그날 수석회의에서 비판했음은
지난 18화에서 잠시 소개했다.
2003년 4월16일 오후 국회 정무위에 출석한 이정재 금감위 위원장(왼쪽), 이동걸 부위원장이 분식회계, 카드사 부실경영 등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개혁적 경제학자인 이 부위원장은 경제 관료들의 책임이 큰 카드대란 해결에 큰 공을 세웠다. 연합뉴스
5월1일(목)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경제학자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 참석자는 장하성, 장하원, 유종일, 김상조, 이동걸, 정태인, 임원혁, 서동만과 나였다. 여기서 카드대란 대책이 논의됐다. 김상조 교수(문재인 정부 3대 정책실장)는 그해 여름 금융대란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세가지 대책을 제시했는데 책임자 문책, 경영진 문책, 망할 회사는 망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장하성 교수의 주장과 비슷한 얘기였다.
이 주장을 두고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이 반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평소 비슷하게 개혁적 성향이지만 카드대란 대책을 두고서는 견해가 달랐다. 실제로 카드대란 해결에는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의 역할이 컸다. 이전 정부의 경제관료들이 제대로 막지 못하고 저질러놓은 카드대란을 학자 출신이 정부에 들어가 말끔히 해결한 것이다. 그토록 심각했던 카드대란을 정부가 공적자금을 한푼도 투입하지 않고 깨끗이 타개했으니 이는 높이 평가할만했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