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9일 트럭운전자노조 연금에 대한 대규모 구제책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미국을 일으킨 것은 월스트리트가 아닙니다. 중간계급이 일으켰지요. 그리고 중간계급을 일으킨 것은 노동조합입니다.”
“낙수효과 경제학이 중간계급을 빈껍데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논리에 따라 기업들이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자 덩달아 다른 소중한 것들도 사라져 버렸어요. 자부심, 정체성, 자존감, 자립, 이런 것들 말입니다. 여러분, 낙수효과 경제학은 사기입니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월스트리트를 비판하고 주류 경제학을 혐오하는 ‘좌파’의 발언이라 여길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두 인용문의 발언자는 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이다. 앞엣것은 2021년 노동절을 기념하는 백악관 브리핑 중의 언급이고, 뒤엣것은 올해 4월 북미건설노동조합 간부들 앞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이 짧은 인용문들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두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노동조합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칭송한다. 그리고 그는 건설노동조합과 친하다.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을 보자.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 대변하는 가치와 규범의 열렬한 신봉자로 자부하며,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 역할을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관련한 언행을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과 이념적 대척점에 있다. 올해 윤석열 정부는 그 어떤 일보다 노동조합 때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겨냥해 ‘건폭’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 모두 자유주의를 외친다. 그런데도 한쪽은 노동조합을 동지라 하고, 다른 쪽은 노동조합에 전쟁을 선포한다. 바이든의 자유주의는 노동조합이 힘이 있어야 일자리를 지키고 다수 대중의 존엄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한다. 윤석열의 자유주의는 ‘자유’를 지겹게 부르짖지만, 그 ‘자유’의 영토 안에 노동조합이 설 자리는 없다. 그가 사랑하는 자유의 광경 안에는 노동조합 같은 조직이 있어야만 자유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은 애초에 없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대변하는 자유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과 뉴딜을 거치며 단련된 자유주의다. 이 자유주의는 지난 한세대 동안 또 다른 버전의 자유주의(신자유주의)에 의해 미국에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보였지만, 이제는 다시 주류로 복귀하고 있다. 이 자유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시민이 민주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으려면 모래알 같은 개인에 그쳐서는 안 되고 결사체로 조직돼야 함을 인정하는 데 있다. 이렇게 결사체로 뭉치지 않는다면, 이미 대기업이나 관료기구 같은 막강한 조직을 배경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당당히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뉴딜 시기에도 그랬지만, 이런 결사체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반면에 윤석열식 자유주의는 시민들이 조직을 만들어 기업이나 국가에 대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영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것은 기업이나 다른 동료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짓이라고 하며, 그러기에 헌법이 보장하는 조직인 노동조합을 ‘폭력배’와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윤석열식 자유주의 세상에는 대기업이나 관료기구 말고는 철저히 개별화된 시민들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처럼 이런 조직에 충성하는 이들이 나머지 시민들에 대해 영원토록 권력의 ‘자유’를 행사할 것이다.
‘자유’라는 수사를 걷어내고 나면, 이 자유주의는 실은 저 낡고 썩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위계질서의 기괴한 연장일 뿐이다. 지금 누가 그 사(士)의 독재를 끈질기게 이어가려 하는가? 노동조합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전쟁에서 이런 지겨운 역사와 대결하는 쪽에 선 것은 누구인가? 답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친애하는 우방국 대통령과 함께 외치련다. “노동조합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