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노동자, 서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권 퇴진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김원철 | 사회부장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죠.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심지어 위법입니다. 경범죄처벌법은 이런 경우 10만원 이하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처벌 수위는 다릅니다. 싱가포르에선 170만원가량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선 8만8000원 정도라고 하네요.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부분 벌금형입니다. 감옥에 가지는 않아요. 딱 그만큼의 잘못, 이라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죠.
사람이 모이면 더러워집니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니까요. 축구장, 야구장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 많은 경우 몇만명 관중이 모입니다. 그래도 깨끗하죠. 그만큼의 인원을 감당할 시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로와 인도는 차량과 사람이 오고 가라고 만들어진 시설입니다. 많은 사람이 머물며 뭔가를 하라고 만든 곳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라고 만든 야외 광장이라 해도 수용 가능한 인원을 넘어서면 버겁습니다. 쓰레기통은 넘치고, 화장실 앞으론 줄이 길게 늘어섭니다. 그리고, 더.러.워.지게 됩니다. 지난 16~17일 서울 광화문~시청 일대에서 진행된 민주노총의 1박2일 집회도 마찬가지였어요. 3만명 안팎이 모였습니다. 민주노총은 청소업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깨끗했다면 좋았겠지만 잘 안됐습니다.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딱 그만큼만요.
헌법은 모일 자유를 ‘보호’합니다. 헌법이 어떤 자유를 보호한다는 건, 그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피해는 감내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 3만명이 모이면 더러워집니다. 불가피합니다. 야구장에 모일 순 없으니까요. 이런 경우 벌금을 부과할지언정 모일 자유는 해치지 말라는 게 헌법의 명령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본질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감내하면서도 헌법이 ‘모일 자유’를 보호하는 건 그만큼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2016년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규탄 집회가 열렸습니다. 막 집회가 시작했을 때 현장엔 4000명 정도가 모여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의 역사는 그 숫자가 1만명, 10만명, 100만명으로 바뀌어간 역사입니다. 그 숫자가 끝내 ‘4000’에 머물렀다면, 온라인에서 댓글 수십만개가 달렸다 해도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떤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다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행위에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의 힘이 있습니다. 더럽다고, 혐오감을 준다고 하지 마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헌법이 모일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대체로 약자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표현의 자유’를 말할 때 헌법 제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인용합니다. 그러나 두 권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보통 엘리트들의 자유입니다.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문자라는 수단을 통해 의견을 전파할 수 있는 이들의 자유입니다. 반면 ‘집회·결사의 자유’는 약자들의 자유입니다. 몸뚱어리와 목소리만 가진 민중이 의견을 알릴 유일한 방법입니다.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손잡고 완성한 프랑스혁명 초기, 부르주아지들은 권력을 손에 쥐자마자 ‘언론·출판의 자유’만 남긴 채 혁명 동지였던 노동자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없애버렸습니다. 이렇듯 약자의 권리, ‘모일 자유’는 늘 연약합니다. 위태로워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지금 정부와 여당도 바로 그 지점을 연일 직격하고 있습니다.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는 집회를 불허하겠다”(윤희근 경찰청장), “물대포 없애고 수수방관하는 ‘물대응’으로는 난장 집회를 못 막는다”(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등의 발언이 이어지더니 야간 집회·시위를 금하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엄포까지 나왔습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시위대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련의 말잔치들이 겨냥하는 대상은 명백합니다. ‘약자들의 권리’예요. 그다음은 어디일까요? 둑은 일단 무너지기 시작하면 와르르 무너집니다. ‘자유’ 대한민국에서, ‘자유’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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