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인근에 모인 4천여명의 시민들이 ‘두번째 지구는 없다’는 펼침막 등을 들고 정부에 기후정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폭스 뉴스>는 선거에 관해서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세계 60여 나라 500여 매체가 협업하는 기후보도 웹사이트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CCN)는 지난 3월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폭스 뉴스>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작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폈다가 제소돼, 최근 1조원가량을 개표기 업체에 물어주게 된 방송사다. 시시엔은 폭스 뉴스가 “기후대응을 방해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의 허위 주장을 거의 매일 퍼뜨렸다”고 고발했다.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는 없다’부터 ‘풍력발전기가 고래들을 죽인다’까지, 온갖 음모론이 망라됐다고 한다.
기후과학자인
마이클 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저서 <신기후전쟁>에서 폭스 뉴스의 ‘독일 태양광 보도’를 소환했다. 방송에서 앵커가 “독일이 미국보다 태양광에서 앞서가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기자는 “일조량이 훨씬 풍부해서”라며 미국은 어렵다는 투로 말했다. 사실은 독일의 평균 일조량이 미국보다 훨씬 적고, 성공 비결은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맨 교수는 “독일이 재생에너지에서 앞서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에) 폭스 뉴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독일, 덴마크 등 유럽 나라들에서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기업, 학자, 정치인, 언론이 미국만큼 활개 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환경규제를 피하려는 화석연료 기업, 이들의 지원을 받는 연구재단과 청부 과학자들, 시장근본주의를 신봉하는 보수 정치인,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들이 매우 집요하다. 오죽하면 기후변화를 대놓고 부정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하는 ‘깽판’까지 칠 수 있었을까.
나오미 오레스키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과학사) 등의 책 <의혹을 팝니다>는 과거 흡연이 건강에 해롭지 않다며 담배 회사를 편들었던 과학자들이 화석연료 기업의 돈을 받고 기후변화 부정론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고 폭로한다.
한국에서는 세계적 흐름을 타고 큰 논쟁 없이 ‘탄소중립’과 ‘환경·사회·투명경영’(ESG)을 지향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기후변화 부정론도 ‘진행형’이다. 4대강 사업이 환경에 이롭다고 주장했던 학자가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책을 내고, 유력 언론이 사실검증 없이 인터뷰를 싣는다. 느닷없이 외국의 기후변화 부정론자를 인터뷰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오기도 한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각국 기후과학자들이 일관되게 인정한 사실에 상반되는 주장을 그대로 전달한 보도는 온라인에서 기후음모론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재생에너지를 공격하는 괴담 수준의 허위정보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려야 한다는 것이 아이피시시 등 국제사회의 합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와 경쟁 관계인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정치인 등이 ‘태양광 패널은 중금속, 전자파, 유해 세척제 때문에 해롭다’고 떠들었고, 이는 일부 언론을 거쳐 온라인으로 퍼져나갔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의 태양광 사업이 주민 반발로 무산되는 등 유휴부지 태양광 설비 확대가 지지부진해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0년 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꼴찌다.
유엔이 아이피시시를 만들고 기후변화 대응을 본격화한 게 1988년으로, 벌써 35년 전이다. 아이피시시가 ‘마지노선’으로 정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1.5도 상승’이 임박한 지금, 거리시위에 나선 청소년들은 ‘이제껏 뭘 했느냐’고 어른들에게 묻는다. 맨 교수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기술과 자원은 이미 있으나, 기후변화 부정론의 훼방 등으로 일사불란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각국이 에너지 전환 등을 제때 해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반지하 집과 지하철을 순식간에 덮칠 대홍수, 식량난·식수난을 부를 극한의 가뭄, 꺼지지 않는 산불, 해수면 상승과 환경 난민을 둘러싼 분쟁, 전염병 창궐 등이 ‘가능성’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후대응 방해꾼들을 막을 수 있을까. 허위정보 유포자들이 대가를 치르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전속력으로 기후대응에 나설 수 있을까. ‘그렇다’는 답이 너무나 간절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