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넬리 블라이(1864~1922)
엘리자베스 코크런은 1864년 5월5일 태어났다. 어릴 때 유복했지만 아버지가 숨지며 집안이 어려워졌다. 1885년 1월 지역언론 <피츠버그 디스패치>에 실린, 여성을 차별하는 칼럼을 읽었다. ‘여성은 남성과 경쟁하지 말고 집안일에 집중하라’는 내용이었다. 코크런은 조목조목 따지며 반박하는 글을 신문사에 보냈다. 코크런의 글솜씨에 감탄한 편집장은 그를 기자로 채용했다. 언론인이 되고서 쓴 필명이 넬리 블라이다.
1887년 조지프 퓰리처(퓰리처상의 그 퓰리처다)가 운영하던 <뉴욕 월드>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는 기획탐사취재에 의욕이 넘치던 그에게 위험한 제안을 했다. 소문이 무성하던 블랙웰스섬의 정신병원을 잠입 취재해 보자는 것. 넬리 블라이는 이상행동을 해서 경찰에 넘겨졌다가 정신병원으로 이송됐고, 실제 환자들이 어떻게 학대받는지 열흘 동안 취재했다. 기사가 나오고 뉴욕시는 “환자 복리를 위해 100만달러 예산을 증액했다”. 글을 써서 세상을 바꿨다.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고, 더 빨리 세계여행을 해보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뉴욕 월드> 경영진은 “여자 혼자 여행은 불가능하니 남자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럼 같은 날 다른 신문사 대표로 출발해 그 남자보다 빨리 세계일주를 하겠다.” 결국 1889년 11월14일 뉴욕을 출발해 혼자서 72일 만에 세계를 돌고 기사를 썼다. 넬리 블라이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이름을 딴 세계일주 보드게임이 출시될 정도로.
눈길을 끌기 위한 ‘스턴트 저널리즘’만 한 것은 아니다. 기자 생활 내내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졌다. 여성 노동 실태를 탐사보도하고, 파업 참가자 가족을 취재했다.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만과 노동운동가 유진 데브스, 여성운동가 수전 앤서니를 인터뷰했다. 가진 돈을 쪼개 부모 없는 아이를 돌봤다.
1895년 마흔살 연상의 사업가 로버트 시먼과 결혼했다. 1904년 남편이 숨진 뒤 회사를 대신 맡아 경영했다. 발명특허를 따고 철제 기름통을 생산했지만, 직원의 횡령 등으로 사업을 접었다. 1910년대에 언론인으로 돌아왔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를 직접 찾아가 기사를 썼다. 1922년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