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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멜로드라마로 전락한 한국형 핵공유

등록 2023-05-04 19:05수정 2023-05-05 14:08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 국방부 총서(펜타곤)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 국방부 총서(펜타곤)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지난주 한·미 정상이 내놓은 워싱턴선언의 핵심은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여당이 “제2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한-미 핵동맹 체결”이라고 홍보하는 데 굳이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 없던 협의체가 하나 생겼으니 성과라고 우기는데 반박해서 무엇하랴.

단 이 협의체가 무엇에 써먹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선언문에는 북한의 핵 위협 정보를 공유하고 확장억제 전략을 토의하기 위해 설립한다고 밝히고 있다. 말 그대로 이 협의체는 핵전쟁을 수행하는 주체가 아니라 차관보급 협의기구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핵무기가 동원되는 전쟁을 수행하려면 군에는 새로운 작전계획과 전쟁 교리, 무기체계와 지휘통제시스템이 필요하다. 한반도에 핵무기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특수인가 요원과 핵 저장시설이 있는지 확인하고, 유사시 동원할 핵무기가 무엇인지도 사전에 정해놓아야 한다.

이러한 군사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새로운 구상과 계획도 없이 분기마다 차관보가 만나 회의를 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기획하는 핵심 주체는 누구이며, 핵전쟁을 수행해야 할 상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어떤 절차를 통해 누가 핵 사용을 건의하고 결정하는 것인가. 재래식 전쟁을 수행하는 지금의 한미연합사령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모든 게 의문이다.

물론 선언문은 “전략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간의 역량 및 기획 활동을 연결하기 위해 견고히 협력한다”고 표방하며 “미국 전략사령부와 함께 수행하는 새로운 도상훈련”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수사의 이면에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데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시키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비확산 정책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핵확산금지조약은 더욱 철저히 준수된다는 서약이 있다. 한·미가 공동으로 핵전쟁을 기획하고 결심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전제돼야 하는데, 미 정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더 분명한 사실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를 개발해 배치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지금 미 본토에 저장돼 있는 100여발의 중력 핵폭탄은 구형 전략폭격기에 탑재해 10시간 넘게 비행해 한반도에 와도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전 항로가 탐지된다. 현대전에서 스텔스 기능이 없는 구형 폭격기로 접근해 핵폭탄을 투하한다는 발상 자체가 상식 밖이다. 미국의 새로운 스텔스 전략폭격기 B-21은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고, 얼마나 생산할지도 모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초 저위력 핵순항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 전술핵미사일 개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현재 미국에는 한반도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로 불리는 무기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미 정부는 아예 “전술핵무기라는 용어 자체도 위험하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술핵이 없다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의 수백배 위력의 전략핵무기 트라이던트를 잠수함에서 발사한다는 걸까? 너무 위력이 강해서 사실상 쓸 수 없는 핵무기다. 미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핵무기 접수를 금지한 비핵화 공동선언 때문에 핵을 탑재하고 우리 항구에 기항할 수 없다. 미 본토에서 북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어떤가? 북극 항로를 통해 오는 미사일은 북한에 도착하기 이전에 중국과 러시아 영공을 통과해야 한다.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핵무기를 포함한 확장억제는 실체가 없는 선언적 차원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해 가기 어렵다. 설명하기 불가능한 워싱턴선언을 두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사실상 핵을 공유한 것으로 국민들이 느끼시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둘러댔다. 정상회담 이전부터 정부는 “한국형 핵 공유”와 “정보동맹 체결”이라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예고편을 마구 틀어댔다. 바로 그 순간에 미국은 중국에 워싱턴선언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며 “중국에 대한 핵 위협은 없다”고 양해를 구한 모양이다. 핵 공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김 차장을 두고 백악관 국장이 직접 나서 “핵 공유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사실상 미국에 혼쭐난 거다. 멜로드라마로 변질된 한-미 정상회담을 보고 중국은 미소 짓고 있을 거다. 이제는 핵에 대한 망상과 집착을 버릴 때다. 안보 현실은 변하는 게 없는데 상실감만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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