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노조 로비스트 출신 브랜든 존슨(민주당) 미국 시카고 시장 후보가 지난 4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실시된 57대 시장 선거 결선투표에서 경쟁자인 폴 발라스(민주당) 후보를 꺾고 당선을 확정한 뒤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시카고/AP 연합뉴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세계 노동절(5월1일)이 며칠 전이었다. 노동절의 유래는 미국의 한 도시와 긴밀히 얽혀 있다. 1886년 5월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벌어진 폭발사고를 빌미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사건이 노동절의 발단이었다. 그만큼 시카고는 19세기 미국 노동운동의 본산이었다.
이후에도 이 도시는 미국, 아니 전 세계 사회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1960년대 흑인해방 운동과 반제국주의 좌파 이념을 결합하며 맹활약한 블랙팬서당 안에서도 가장 활기 넘치던 곳은 젊은 지도자 프레드 햄프턴이 이끌던 시카고지부였다. 햄프턴은 가난한 흑인과 라틴계, 백인 노동자들에게 인종갈등 대신 자본주의에 맞선 단결을 호소했다. 체제는 이 외침에 총알 세례로 답했지만, 아무튼 20세기에도 시카고는 각성한 민중의 거점이었다.
한달 전 시카고는 온 세상에 또 다른 역사적 뉴스를 알렸다. 2월28일 실시된 시장선거 1차 투표에서 민주당원 두명이 1,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다른 선거들과 달리 정당공천 제도는 없고 결선투표는 있기에 벌어진 광경이었다. 그런데 두 후보 중 폴 발라스는 민주당 주류 성향이지만, 흑인 교사 출신인 브랜든 존슨은 그렇지 않았다. 존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활발한 투쟁을 벌여온 교원노조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2016년 대선부터 줄곧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진보파 후보를 지지했다.
놀랍게도 존슨은 4월4일 결선투표에서 52.16%를 얻어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발라스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는 2016년 버니 샌더스 돌풍 이후 ‘미국 민주사회주의’ 그룹 소속 연방하원의원들이 등장한 것만큼이나 중대한 변화의 신호다. 뉴딜 이후 공화당 후보가 한번도 시장에 당선된 적이 없고 레이건 시대에도 여성, 흑인 시장을 배출한 시카고라지만, 그런 역대 시장 가운데에서도 존슨은 가장 좌파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부흥하고 있는 노동운동이 배출한 당선자라는 점이 돋보인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시장선거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5일 밤 시카고 도심에서 갑자기 폭동이 일어났다. 느닷없이 천여명이나 되는 청소년들이 모여들어 불을 지르고 자동차를 뒤집는가 하면 지나가는 시민을 이유 없이 폭행했다. 소셜미디어에 나돈 “도시를 장악하자”는 메시지를 보고 모여든 10대들이었고, 화면에 잡힌 모습을 보면 다수가 흑인이었다. 언론은 이를 인종갈등 문제로 다뤘다.
사건이 나자 다들 시장 당선자의 입을 쳐다봤다. 교사인데다 흑인인 존슨은 흑인 10대들의 예기치 않은 폭력 앞에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파괴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도 “소외된 공동체의 청소년들을 악마화해서는 건설적 해법을 찾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종갈등으로 몰아가려는 흐름에는 분명히 선을 그은 셈이다.
미국 진보-사회운동 세력이 모처럼 거둔 승리를 무색케 하는 이번 사태는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21세기에 여러 나라에서 좌파에게 닥칠 어려운 시험을 예고한다. 오랫동안 좌파는 승리의 그날이 오면 역량과 규율을 갖춘 노동계급이 낡은 질서를 물려받아 새로운 세상을 정연하게 열어갈 것이라 내다봤다. 개혁파든 혁명파든 모두 ‘진보’란 그런 모습이리라 믿었다.
그러나 21세기 변혁세력이 마주할 광경은 존슨과 지지자들이 직면한 곤혹스러운 처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자본주의 질서가 갈가리 찢어놓고 활력과 잠재력을 고갈시킨, 폐허에 가까운 사회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껏 소망했던 것과 달리 좌파가 집권하고 난 다음 착수해야 할 과제는 ‘완성’이나 ‘번영’이 아니라 ‘구조’나 ‘재건’, ‘회복’ 쪽에 가까울 것이다. 붕괴 중인 사회를 가까스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업 말이다. 시카고 진보파가 선거 승리 뒤 맞이한 시련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우리 모두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