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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 대통령 “정부는 학습, 진화하는 조직이어야…여러분이 38명의 대통령”

등록 2023-04-24 18:31수정 2023-04-25 10:03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12화 첫 장관 연수회

장관·수석 등 이틀 동안 연수회

노 대통령 국정철학 설파
“참여정부는 개혁정부가 돼야
기술혁신·시장개혁·문화혁신,
동북아시대·균형발전 나아가야
검찰 아닌 국민이 정부 지켜줘”

이창동 “권위주의 타파가 핵심”
김두관 “언론개혁에 정권 성패”
유인태 “이번 조각은 파격, 혁명”
조영길 “군·검 기수 인사가 문제”
고건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

노무현 대통령은 각료,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 함께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국정토론회를 갖고 새 정부의 국정과제와 운영방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가운데 “내각에 권한과 책임을 대폭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 첫날인 2003년 3월7일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국정철학과 운영방향’을 주제로 직접 강연한 뒤 참석자들과 토론을 벌였으며 저녁엔 ‘정책 실패와 성공사례’에 대한 토론을 가졌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은 각료,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 함께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국정토론회를 갖고 새 정부의 국정과제와 운영방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가운데 “내각에 권한과 책임을 대폭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 첫날인 2003년 3월7일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국정철학과 운영방향’을 주제로 직접 강연한 뒤 참석자들과 토론을 벌였으며 저녁엔 ‘정책 실패와 성공사례’에 대한 토론을 가졌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3월 7~8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장관·위원장·수석 연수회가 열렸다. 정부 출범 뒤 첫 연수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철학을 장관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긴 기조연설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7일 오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7일 오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나의 일생은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앞으로 5년간 국민 먹을거리를 어떻게 장만하나 하는 고민이 앞선다. 첫째, 정치의 본질은 권력투쟁이다. 그러나 민심을 얻기 위해 왕도사상이란 것도 나오고, 국민에 대한 봉사가 필수다. 국민은 스스로 주인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에게 속지 않는다. 둘째, 정치는 기본적으로 조삼모사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국민을 기분 좋게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셋째, 정치는 국방, 치안, 경제와 직결된다. 넷째, 국정비전을 내놓아 국민에게 길을 제시해야 한다. 국정은 근본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 통합하는 일이다. 다섯째, 적절한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참여정부는 개혁정부가 돼야 한다. 개혁정부란 첫째 왕성한 기술혁신이고, 둘째는 시장개혁이다. 재벌개혁을 포함한 시장개혁을 외국에서 지켜보고 있다.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개혁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필요하면 속도조절은 하되 일회성이 아니라 5년 상시 개혁이 돼야 한다. 셋째, 문화혁신. 가치지향의 사회로 가자는 뜻이다. 페어플레이 문화, 원칙과 신뢰가 확립돼야 한다. 넷째, 동북아시대. 이는 시장 확대를 의미한다. 다섯째, 지방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부담과 갈등 비용이 크므로 균형발전이 필요하다.

개혁과제는 ①정치개혁. 정치권이 자율적으로 개혁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안 하면 대통령이 당원들을 설득할 것이다. ②정부개혁. 영국의 대처 총리나 뉴질랜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만 나는 작은 정부를 공약한 적이 없다. 그보다는 ‘효율적 정부’가 중요하다. 조직 개편은 일거에 하지 않겠다. 1~2년 일해 가면서 천천히 하겠다. ③언론개혁. 국민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언론 스스로 하는 게 좋고, 정부가 나서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부는 적어도 언론과 유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정부와 언론이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내가 대통령 당선된 것도 언론과 유착하지 않고 싸워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언론과 적당히 타협할 생각 없다. ‘가판 신문 안 보기’ 운동 같은 것이 필요하다. ④교육개혁. ⑤권력기관개혁. 앞으로 국정원장의 정치보고를 받지 않겠다. 국정원은 이제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북아시대에 맞는 새 역할, 남북문제나 국제적으로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검찰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를 마지막으로 지켜주는 힘은 검찰이 아니고 국민이다. 5년간 당당하게 나가겠다. 대통령이 검찰에 의지하면 검찰이 국민 위에 군림한다.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불신받는 조직이 환골탈태하려면 서열을 타파하고, 과감한 발탁인사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학습, 진화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장관은 공무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일하는 10개 중 1개라도 채택될 거라는 신뢰를 줘야 한다. 공무원들을 신뢰하며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과거 국정감사 뒷바라지하느라 정부부처 옆에 방 한칸 얻어놓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공무원들을 보며 우리나라가 앞으로 잘 되겠구나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7일 오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국정운영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7일 오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국정운영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상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들은 뒤 조를 나눠 분임토의에 들어갔다. 나는 허성관 해양수산부, 이창동 문화관광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유인태 정무수석과 함께 4분과 소속이었다. 토의 1주제는 언론개혁이었다. 이 장관이 주무 장관으로서 견해를 피력했다. “언론개혁은 기관이나 힘을 통해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법과 제도의 문제도 아니다. 새로운 대언론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문화관광부에는 3대 원칙이 있다. 개방과 공평, 정보공개다. 브리핑 참여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고 기자실 대신 브리핑룸이나 취재지원실을 만들어 정보를 신속 과감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부 서류 상당 부분은 공개 가능하다.”

허 장관은 “신문 가판은 언론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일단 기사화해놓는 것인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 기사 작성이 정확해야 한다. 가판 구독 금지가 맞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남해군수 시절 동아일보는 남해에 주5일 상주하며 취재했다. 언론은 일단 일이 터지면 안 봐준다. ‘모든 힘이 (조중동이 모여 있는) 태평로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언론개혁은 국민의 바람이고, 참여정부가 개혁정부가 되느냐 마느냐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동조하면서 덧붙였다. “오직 합리, 정도밖에 없다. 기자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지만 일관성 유지를 위해 일절 거부하고 있다. 퇴근 때 청사나 집 앞에 기자가 대기하고, 집에서도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언론 좋아해서 자꾸 노출되다간 쉽게 무너진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 영국 정치가 파월의 말을 인용해서 좌중을 웃겼다. “정치가와 파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신문에 맞아 죽기 쉽다.”

2003년 3월7일 저녁 ‘참여정부 국정토론회’ 만찬장에서 정세현 통일부 장관(왼쪽부터), 노무현 대통령,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허성관 해양수산부 장관이 자유배식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3년 3월7일 저녁 ‘참여정부 국정토론회’ 만찬장에서 정세현 통일부 장관(왼쪽부터), 노무현 대통령,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허성관 해양수산부 장관이 자유배식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연수회 둘째 날 다면평가 이야기가 나왔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업에서 다면평가를 실시해보니 인기투표 비슷해서 문제가 많고 폐기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명숙 환경부 장관도 일을 추진하는 사람은 주위와 충돌해 점수가 낮게 나오기 쉬우므로 다면평가를 과신하면 안 되고 참고자료 정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건 총리는 서울시장 시절 추진했던 개방행정(OPEN)을 소개했다. 공무원이 단돈 만원만 받아도 퇴출당했고, 민원 담당지역은 무작위로 운영했다. 시정 외압에는 시장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온라인으로 민원을 처리했더니 투명성이 제고됐다고 한다. 고건 총리는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라는 명언도 남겼다.

개혁과 저항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유인태 수석은 후천개벽이란 표현을 썼다. “참여정부는 국민이 변화를 명한 정권이다. 이번 장관 인사는 파격이다. 김원기, 정대철조차 한명도 추천하지 못했다. 이번 조각은 혁명이다.” 이창동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젊은 교사 시절 ‘나이 50 넘는 교사들 다 나가면 좋겠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권위주의 문화는 와이에스(YS), 디제이(DJ) 시절에도 지속했다. 이걸 깨려면 문화충격이 필요하다. 김수환 추기경이 ‘YS, DJ도 대통령 되기 전과 후가 다르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의 권위주의와 화려한 카펫, 누가 대신 문 열어주는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평소 말이 적은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연공 인사에 관해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남겼다. “검찰과 국방부는 기수별 승진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듣고 보니 우리가 크게 잘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명숙 장관도 중요한 말을 했다. “4월 국회가 열리면 공무원들은 국회에 매여 1개월 업무 공백이 생긴다. 정부의 국회 대응에 개선이 필요하다. 공무원 채용경로를 다양화해야 한다. 고시는 전문성이 낮다. 별정직, 개방직을 늘여야 하는데 한두명 뽑아봐야 왕따가 되기 때문에 3분의 1 정도가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연수회 결론을 내렸다. “정부 인력충원에 고시라는 단일 입구가 있는데 기수별 서열문화가 문제다. 여성, 장애인, 이공계, 지방의 인재를 뽑을 채용경로 다양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목표는 일류국가 만들기다. 이는 개혁을 통해 가능하며, 정부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지도자가 조직을 감동시키는 것은 열정과 학습·토론이다.” 끝으로 노 대통령은 윤성식 고려대 교수의 저서 <정부개혁의 비전과 전략>을 읽어보라고 추천하면서 “여러분이 38명의 대통령이 돼주세요”라는 말로 이틀간의 연수회를 끝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각료,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 함께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국정토론회를 갖고, 인사지침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과 관련, “원칙적으로 법무장관에게 맡기려 했으나 대통령 인사권에 정면 도전하는 상황이어서 대통령 소관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 부득이 대처 안할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한 검사들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원할 경우 이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은 각료,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 함께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국정토론회를 갖고, 인사지침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과 관련, “원칙적으로 법무장관에게 맡기려 했으나 대통령 인사권에 정면 도전하는 상황이어서 대통령 소관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 부득이 대처 안할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한 검사들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원할 경우 이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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