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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잔인한 달, 4월

등록 2023-04-23 18:20수정 2023-04-24 02:36

중국발 황사의 영향으로 전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PM10으로 ‘매우 나쁨’ 수준을 보인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뿌옇다. 김정효 기자
중국발 황사의 영향으로 전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PM10으로 ‘매우 나쁨’ 수준을 보인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뿌옇다. 김정효 기자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다”

너무나 유명한 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시인 엘리엇은 이 시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가 돼 환갑이 되던 해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엠제트(MZ)세대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 있다. 그래도 뮤지컬 <캣츠>는 익숙할 것이다. 이 뮤지컬의 원작자가 바로 엘리엇이다. 그가 쓴 우화시집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지침서>가 뮤지컬의 배경이다.

많은 고전이 그러하듯 ‘황무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유명해서 그리고 첫 줄이 인상적이어서, 일부러 시를 찾아 읽었다. 30여년 전이다. 이공계 대학생이 소화할 수 있는 시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다시 찾아본 시는 여전히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변 지인 그 누구도 이 시를 이해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시를 떠나서, 이 땅의 4월은 잔인하다. 벚꽃과 함께 생기롭게 시작하는 4월. 그러나 화사함은 잠시다.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순간들이 이어진다. 제주 4·3사건, 4·16 세월호 침몰, 그리고 4·19혁명. 어쩌면 역사의 비극 때문에 ‘황무지’는 여전히 회자하는지 모른다.

기상학적으로도 4월은 잔인한 달이다. 바로 황사 때문이다. 올해는 황사가 유독 심하다. 1월부터 시작된 황사는 3월을 지나 4월까지 계속되고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이미 16일의 황사가 기록됐다. 4개월 동안 평균 6일 내외 황사가 발생하는데, 올해는 거의 세배나 많다. 지난 20년 동안 한번도 관측되지 않은 수치다. 심각한 것은 숨 쉬기 힘들 만큼 강력한 황사라는 점이다. 지난 11일 서울에서 관측된 미세먼지 최대 농도는 단위 부피당 459㎍(마이크로그램)에 달했다. 미세먼지 ‘매우 나쁨’의 기준이 151㎍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매우-매우 나쁨 수준의 황사가 발생한 셈이다.

만약 5월에도 황사가 계속된다면, 과거 황사가 가장 빈번했던 2001년의 기록 ‘25일’을 경신할지도 모른다. 4월 말 현재, 이미 역대 2위의 기록이다. 아직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지난 금요일부터 또다시 전국적으로 황사가 발생했다. 부산 일부 지역에서는 300㎍ 이상 미세먼지가 관측됐다. 이 황사는 주말까지 이어졌다.

황사는 보통 중국과 몽골의 경계 지역인 내몽골고원과 그보다 남쪽에 있는 황투고원에서 시작한다. 이 지역에 강한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높게 떠오르게 되고, 이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한반도에 황사가 발생한다. 이 지역이 평소보다 건조하면 황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건조한 황무지에 흙먼지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겨우내 내몽골고원과 황투고원에 눈이 충분히 쌓인다면, 이듬해 봄 황사는 줄어들 수 있다. 대지를 덮은 눈이 봄에 녹으면서 황무지를 적시고, 흙먼지를 줄이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이 지역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 올봄 빈번한 황사가 놀랍지 않은 이유다.

황사를 줄이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흙먼지가 잘 날리지 않게 나무를 심거나, 황사의 발원지에 충분한 물을 공급해 풀과 잡목이 자라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좁은 지역에 국한돼 있다. 거대한 내몽골고원과 황투고원을 푸르게 만들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특히 지난 주말 황사처럼 내몽골고원이 아니라 고원의 동쪽에서 황사가 시작된다면, 속수무책이다.

잔인하지 않은 4월? 보다 넓은 황무지에 녹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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