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열린 부활절연합예배에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해마다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전하긴 했지만, 직접 예배에 참석한 건 이례적이었다. 장로 대통령으로 유명한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끔 청와대를 나와 본인이 다니던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긴 했지만, 부활절 예배에 와서 강단에 직접 서지는 않았다.
윤 대통령은 꼭 직접 말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나 보다.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주목한 그의 발언이다. “제가 늘 자유민주주의라는 우리의 헌법 정신,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제도와 질서가 다 성경 말씀에 담겨 있고 거기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진실에 반하고 진리에 반하는 거짓과 부패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없도록 헌법정신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헌법정신도 소중하고 성경 말씀도 귀한 것이니 좋은 것끼리 엮어 칭송할 순 있다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대통령으로선 위험한 발언이다. 민주주의의 시작을 고대 그리스 아테네로 보는 학계 정설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논리라면 독재정권이 만든 유신헌법도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포장할 수 있다.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단어를 처음 넣은 것도 유신헌법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우리나라 헌법은 ‘국교는 없고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못박고 있는데 종교 교리와 헌법을 동일시하니 이야말로 헌법정신 위배 아닌가.
윤 대통령의 헌법정신 사랑이 유난한 건 익히 알려져 있다. 2019년 검찰총장 취임 두달쯤 뒤 ‘나는 헌법주의자’라고 밝힌 이후 검수완박에 반대할 때도, 검찰총장에서 사퇴할 때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도, 당선된 뒤에도, 만물기원설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걸 헌법정신으로 연결한다. “헌법정신을, 민생 현장인 전통시장에 오면 가슴으로 벅차게 느낄 수 있다.”(2월14일 충북 청주 전통시장), “대구시민의 땀과 눈물이 담긴 역사의 현장인 서문시장에 우리의 헌법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다.”(4월1일 대구)
헌법정신을 느낀 것까진 좋은데 그래서? 그 다음을 모르겠다. 이런 분이 여러 국민이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키는 일에 왜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대통령의 말을 있는 그대로 내보낸 방송국엔 “악의적”이라며 소속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는지 말이다. 헌법 수호를 강조하면서 대통령실을 감청한 미국에는 되려 ‘악의가 없었다’며 적극적으로 감싼다.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며 당선인사한 지 1년이 지났건만 아직 야당 대표와 면담 한번 안했다. 헌법정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보여주지도 않는데, 늘 자신은 헌법정신을 지킨다고 말한다.
짐 윌리스의 <하나님의 정치>가 생각난다. 미국의 복음주의계 리더인 짐 윌리스는,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며 전쟁까지 불사하는 부시 대통령의 2004년 선거를 지켜보며 정치와 종교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해 글을 썼다. 그는 책에서 “우리가 할 일은 국가의 모든 정책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의 복과 승인이 내려졌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종교를 입에 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링컨의 말처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섰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대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여기서 링컨의 말이란, 미국 남북전쟁 때 하나님은 북군 편인지 남군 편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링컨이 “하나님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 나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라고 답했다는 일화에 근거한다.
헌법정신을 하나님의 가르침이라 생각한다니 마침 더욱 적절한 조언이 될 것 같다. 자신이 하는 모든 결정은 다 헌법정신으로 포장하고 헌법정신을 어겼다며 주위를 심판하면서, 정작 본인은 헌법정신을 지키고 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은 쏙 빼놓고 있지 않은지부터 살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