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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범인 1300명·주검 2600구 거쳐 간 ‘영원한 수사반장’

등록 2023-03-23 18:49수정 2023-03-24 02:36

[나는 역사다] 최중락(1929~2017)

“바로 위 형이 경찰이었다. 그래서 나도 경찰이 됐다.”

형사가 된 일화는 강렬하다. “‘사람 살려’ 소리에 달려가 보니 할머니가 날치기를 당했더라. 돈을 빼앗아 튀는 놈을 업어 치니 같은 패 네명이 ‘와’ 하고 덤벼들었다. 격투 끝에 내 주먹을 맞고 전부 바닥에 쓰러졌다.” 이 일을 계기로 최중락은 형사로 차출됐다.

한국전쟁 중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해 41년을 근무했다. “거리에서 10년, 사무실에서 20년, 집에서 10년을 잤다.” 체포한 범인이 1300여명, 직접 접한 주검이 2600여구라는 이야기가 인터뷰마다 나온다. 사건의 실마리가 안 잡혀 고민하다 주검을 안은 채 잠든 적도 있단다. 1960년대 후반에는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그때 간호사 기숙사에 도둑이 들었다. “환자복을 입고 6일 동안 영안실에 잠복한 끝에 다시 찾아온 도둑을 잡은 일이 기억에 남는다.”

고도성장기의 그늘이 짙어지던 1970년대로 접어들며 한국 사회의 범죄도 달라졌다. 순진한 생계형 범죄 대신 분노와 원한이 얽힌 강력범죄가 늘었다. 1971년부터 드라마 <수사반장>이 전파를 탔다. 최중락은 드라마 속 박 반장(최불암)의 실제 모델이었다. ‘실제 수사반장’, ‘영원한 수사반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드라마 제작도 도왔다. 전국의 강력범죄를 간추려 제작진에게 알려주고, 해마다 한두번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범인으로 많이 나온 사람은 이계인 배우. 임현식 배우는 정말 배고파 도둑질하는 생계형 범죄자로 나오곤 했다.”

1990년 퇴직한 뒤로는 수사연구관으로 일했다. 민간 경비업체 고문을 맡기도 했다. 자신이 체포한 범법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인연이 있다. 1963년 청년 절도범 조세형을 체포한다. 1970~80년대 고관대작들의 집을 골라 털어 ‘대도 조세형’으로 널리 알려진 그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 조세형이 사회에 복귀할 때 최중락이 도왔다. 민간경비업체 연구소에 일자리를 구해줬다. 그러나 조세형은 다시 도둑질에 손을 댔고, 최중락은 안타까워했다. 영원한 수사반장은 2017년 3월24일 세상을 떴다. 2019년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됐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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