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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불가능한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는 이유

등록 2023-03-14 18:20수정 2023-03-15 02:37

왜 정부는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노동개혁 방안을 계속 주장하는 걸까? 이는 “떳떳하지 못하니까 공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따위의 비난으로 노동운동에 흠집을 내는 진흙탕 싸움과 국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 장면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종강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 방안은 ‘일주일 120시간 노동’이라는 구절로 상징됐다. 2021년 7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발언한 게 물의를 빚자 바로 다음날 해명을 했다. “저는 검사로 일하면서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하여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려 힘썼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부당노동행위’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당노동행위’는 근로기준법과 별로 관계없는 개념이다. 많은 사람이 부당노동행위를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행한 부당한 행위’를 뜻한다고 잘못 알고 있다. 언론이 ‘부당노동행위’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도 그렇게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부당노동행위란 노동조합법상 용어로 사용자가 노동조합 활동에 지배·개입하는 행위들을 이르는 것이지, 막연히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행한 부당한 행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노동조합법을 공부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내용이다.

지난해 6월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근로시간 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을 우선 추진과제로 선정했다. 노동시간 관리 단위 기간을 확대하고 임금체계를 연공호봉제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한달가량 뒤인 7월18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했고, 이 연구회는 약 5개월 뒤 ‘공정한 노동시장,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라는 긴 제목의 권고문을 발표했다.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하고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꾼다는 것이 그 중심 내용이다.

연구회가 내놓은 방안대로라면 최대 92시간 노동이 가능해지고 이론상으로는 주 120시간 노동도 가능하다는 주장과, 실제 92시간 노동은 불가능하고 주 7일 일하는 경우에는 80.5시간, 주 6일 일하는 경우에는 69시간 노동까지 가능하다는 공방이 노동계와 정부 사이에 오가기도 했다.

석달 뒤인 올해 3월6일 이정식 장관은 비상경제장관회의가 끝난 뒤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한다는 것인데, 근무일 사이에 11시간 휴식을 부여하면 한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 내용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이날부터 40일간 입법예고한다. 국회에서 법이 개정돼야 시행 가능한 정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개정안이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임금체계 개편 역시 마찬가지다. 2021년 6월 기준 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민간 사업체 164만개 중에서 61.4%인 100만개 사업체에는 임금체계가 아예 없고, 호봉급 23만개(13.7%), 직능급 22만개(13.6%), 직무급 17만개(9.4%)가 그 뒤를 이었다. 수치상으로는 임금체계 개편보다 임금체계가 없는 사업체에 체계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란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엠제트(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지시했다. 젊은 직장인들이 연공호봉 임금체계에 가지고 있는 “나이만 많은 선배들이 임금만 많이 받는다”는 불만을 노동법 개정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취지로 보이나, 사업체마다 수십·수백·수천개에 이르는 직무를 단시간에 일일이 평가해 직무에 따른 임금을 책정하기도 어렵거니와 직무급이 정착된 나라에서도 같은 직무 안에서 연공에 따른 차이를 세분화하고 있다. 결국 한국 사회에 연공서열과 관계없는 직무·성과급 임금체계가 정착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노동조합의 회계 장부를 제출하라는 요구도 법률적으로 강제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왜 정부는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노동개혁 방안을 계속 주장하는 걸까? 이는 “떳떳하지 못하니까 공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따위의 비난으로 노동운동에 흠집을 내는 진흙탕 싸움과 국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 장면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노동운동과 야당이 야합해 노동개혁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여당이 과반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최소한 내년 총선 전까지는 이런 식의 노동개혁 공방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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