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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불편과 불행을 구분해주세요

등록 2023-03-09 18:34수정 2023-03-10 02:34

2021년 5월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광장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중단을 촉구하는 깃발이 걸려있다.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날인 1990년 5월 17일을 기념하며 깃발을 걸고,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21년 5월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광장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중단을 촉구하는 깃발이 걸려있다.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날인 1990년 5월 17일을 기념하며 깃발을 걸고,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성소수자에 관한 강의 때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쩌다 동성애자가 되나요? 변할 수는 없나요?’와 같은 것이다. 나는 답 대신 가끔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누군가 선생님에게 와서 동성애자로 살면 1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하면 되실 생각 있으세요?” 대부분 바로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그럼 10억은요?” 잠시 동공이 흔들리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럼 100억원이라면요?” 이쯤 되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어휴, 그 정도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죠.” 강의실 분위기는 100억원이 생긴다는 즐거운 상상 덕분에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미 수강생들에게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나는 이어서 말한다. “그런데요. 저는 100억을 준다고 해도 이성애자인 척하며 사는 걸 택하진 않을 거예요.”

내가 돈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진지하게 다 해본 상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인 순간은 동시에 동성애자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까 겁이 났으니까. 그렇다고 평생 나 자신을 속이고 살 수 있을까. 나의 정체성이 인생의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과 바꾸게 되는지 수천수만번 계산했다. 마침내 1000억원과도 못 바꿀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스스로 긍정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고백을 하면 다른 분들도 진지해져서 새로운 답을 내놓는다. 아무리 100억원이 생긴다 해도 거짓말하고 살면 행복하진 않을 거 같다는 분도, 더 구체적인 조건을 물어보는 분도 있다. “그러면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동성애자인 척하고만 살아도 100억 준다는 건가요? 그런데 누구에게 동성애자로 보이면 되나요? 속으론 좋아하는 이성이 있는 건 괜찮나요?” 옆에서 다른 분이 거드신다. “그냥 살아. 사랑하는 사람과도 못 살면서 100억이 뭔 소용이야.” 그러면 또 다른 분이 나선다. “아휴. 사랑이 밥 먹여주나. 그냥 돈이 나아.” 강의실이 갑자기 왁자지껄해진다.

이제 진지하게 인간의 ‘성적 지향’에 관해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어쩌다 동성애자가 되는지 묻기 전에 어쩌다 이성애자가 됐는지부터 물어야 한다는 것과 성적 지향의 가치가 1000억원이 넘을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달았으니. 또한 동성애가 어린 시절 한때 실수로 늪에 빠지는 것 같은 사고가 아니라, 길고 긴 삶과 사랑의 맥락 안에 있다는 것까지 느끼게 된다. 물론, 여전히 순수한 측은지심으로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다. “동성애자로 사는 건 힘들 텐데 그냥 이성애자인 척하고 살면 안 되냐”, “이성애자들도 사실 꼭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게 아니라 그냥 결혼하고, 애 낳고 가정 꾸리고 살다 보니 정들어서 사는 거”라고. 남들처럼 그렇게 살 수 없냐고 한다. 나 역시 동의한다. 대충 조건 맞춰 결혼하고 징글징글하게나마 정들어서 사는 건 동성애자들도 잘할 수 있다. 반드시 이성애자가 돼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우선 동성결혼부터 가능하게 하자.

동성애자든 트랜스젠더든 성 소수자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그때마다 말한다. “불행한 게 아니라 불편한 거예요.”

불행하다고 지적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그 당사자에게 있는 것 같지만 불편함에 주목하면 달라진다. 만약 어떤 건물에 계단만 있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면 이건 불편함이다. 휠체어 탄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휠체어도 다닐 수 없게 만든 설계자들 잘못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장애인의 삶은 불행하다고 말한다면 책임회피일 뿐이다.

불행은 어떤 이들의 삶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이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내세우는 방패다. 불편과 불행은 다르다. 불편은 변화와 개선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놀랍게도, 이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더 편안하게, 더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불편과 불행을 구분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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