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Come il Vento. 우리말로는 ‘바람처럼’.
처음 보는 와인이었다. 이 낯선 와인을 주문한 지인은 ‘새그럽다’는 시음평을 남겼다. 경상도 방언으로 조금 시다는 말이다. 화이트와인 고유의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졌다. 독특한 신맛과 함께 감귤향이 느껴졌다. 식전주보다는 디저트 와인으로 제격이었다.
누가 지은 이름일까? 이탈리아어 설명이 라벨에 있었지만 굳이 번역하지 않았다. 또다시 시음할 기회가 있을 테니. 그때 소믈리에에게 물어볼 것이다.
품질 좋은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는 그 어떤 작물보다 날씨에 민감하다. 신맛과 단맛이 모두 우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도의 단맛은 많은 햇볕을 필요로 한다. 반면 신맛은 서늘한 날씨가 필수다. 그래서 양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데에는 적당한 일교차가 중요하다.
보통 포도는 연평균 기온이 10도 이상 20도 이하 지역에서 생산된다. 평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절의 변화다. 여름철엔 19도 이상 유지되면서 일조량이 풍부해야 한다. 물론 너무 더운 날씨는 좋지 않다. 반면 겨울에는 지나치게 춥지 않아야 한다. 포도나무는 영하 20도까지 견딜 수 있다지만, 되도록 영하 1도 이상이 좋다고 한다.
적당한 비도 필수다. 정확한 강수량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봤다. 포도나무가 성장하는 데 연간 670mm 정도 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기온처럼 강수량도 계절에 따른 변화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한여름에 비가 집중된다면 이는 최악의 조건이다. 겨울과 봄에 비가 많이 내리고, 여름에는 포도를 맺을 만큼만 적당량의 비가 내리는 것이 좋다. 온화한 기후를 가지는 지중해 지역에서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독일산 와인은 위도 50도 이상 고위도 지역에서도 생산된다. 국지적인 기후 특성과 지형 때문이다.
포도가 기후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과거 포도를 재배하던 유럽의 농부들은 경험적으로 이를 알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포도농장들은 수백년 동안 해마다 생산된 포도와 와인의 양을 기록했다. 과거 경향을 토대로 다음 해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 자료는 중세 이후 기후변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포도는 변화하는 기후에 직접 반응하고 있다. 지난 세기부터 연평균 기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포도의 당분이 증가하고 있다. 달콤한 포도는 발효되면서 알코올을 증가시켜,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게 된다. 그러니까 지구온난화로 인해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고 단맛이 증가하고 있다. 아직은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매우 가까운 미래에 이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현재의 와인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과 함께 극단적인 한파와 폭염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을 기억하는가. 7월부터 전 세계 미디어는 유럽의 폭염에 관한 기사를 매일 쏟아냈다. 유럽에서 여름에 선선하기로 유명한 영국. 지구온난화가 가속한다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와인을 영국 와인이 대체할 거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영국은 역사상 가장 더웠다. 지역에 따라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어섰다. 그보다 위도가 낮은 유럽 전역에서도 심각한 폭염이 발생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 대규모 산불이 나기도 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폭염과 산불은 포도 생산에 치명적이다. 포도가 지나치게 익고 포도의 향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구온난화와 극단적인 폭염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리고 와인은 변해갈 것이다. ‘바람처럼’ 와인도 바람처럼 사라져버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