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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리 딸 수연이 죽음 때도 반짝 관심…‘다음 소희’ 더는 없어야”

등록 2023-02-20 14:15수정 2023-02-21 02:40

영화 <다음 소희> 실제 사건 홍수연 양 아버지 인터뷰
수연이 다음 민호·정운이 잇단 사고
직업계고 실습 사고 방지법 13건 계류중
15일 오후 전북 전주시의 한 저수지에서 홍순성(64)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직업계고 3학년이었던 홍씨의 딸 홍수연양(당시 18살)은 현장실습 도중 실적 압박 등을 호소하다 2017년 1월 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직 저수지 수면 아래에는 수연양이 죽기 직전까지 쓰던 휴대전화가 가라앉아 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15일 오후 전북 전주시의 한 저수지에서 홍순성(64)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직업계고 3학년이었던 홍씨의 딸 홍수연양(당시 18살)은 현장실습 도중 실적 압박 등을 호소하다 2017년 1월 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직 저수지 수면 아래에는 수연양이 죽기 직전까지 쓰던 휴대전화가 가라앉아 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수연이에서 멈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민호, 정운이 계속 죽었잖아요. 이 아이들이 ‘쓰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은 아니었잖아요.”

지난 15일 오후 전북 전주시 도심에서 멀지않은 한 저수지에서 만난 홍순성(64)씨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곳을 찾는다. 저수지 주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걷는 것 말고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홍씨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오직 딸, 수연이 때문이다. “살아있는 수연이가 서있던 마지막 자리니까요. 유해를 뿌린 섬진강보다는 여기를 더 자주 오게 되더라고요.”

정주리 감독이 2021년 수연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며 찾아왔을 때, 홍씨는 <다음 소희>라는 제목을 듣고 흔쾌히 허락했다. 2017년 1월 수연이가 죽고, 같은 해 11월 제주시의 한 음료제조업체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이민호군이 목과 몸통이 제품 적재기 프레스에 눌려 사고 발생 열흘 만에 숨졌다. 2021년 10월에는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정운군이 업체 대표의 지시로 잠수 자격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잠수작업에 나섰다가 바다에 빠져 숨졌다. 모두 수연이와 같은 직업계고 학생이었고, 열여덟살이었다. 홍씨는 “영화를 통해 수연이 사건이 재조명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며 “영화 제목처럼 ‘다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2017년 1월23일 홍씨의 딸 홍수연(당시 18살)양이 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주의 한 직업계고 애완동물과 3학년이었던 수연양은 엘지유플러스(LGU+)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도중 실적 압박 등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의 실제 사건 주인공이 바로 수연이다.

영화 속 ‘소희’가 춤을 좋아했다면, 수연이는 한때 배구선수를 꿈꿨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차곡 차곡 실력을 쌓아갔지만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당시 전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배구부 내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꿈을 접어야 했다. 직업계고 진학은 대학 진학 대신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돈을 벌겠다는 수연이의 바람에 따른 것이었다. 홍씨는 “기왕이면 전망있는 과를 가야 한다”며 딸에게 직접 ‘애완동물과’를 추천했다.

열여덟살 수연이가 처음 마주한 사회는 ‘부조리’의 연속이었다. 고객센터는 수연이의 전공과 거리가 멀었고 특히 수연이가 배치된 ‘해지방어부서’는 인터넷 해지를 원하는 고객의 마음을 돌리는 동시에 상품까지 판매해야 했다. 폭언에 그대로 노출돼 ‘욕받이 부서’로도 불리는 곳이었다. 회사는 실습생이었던 수연이에게 일반 노동자들과 똑같이 하루에 채워야 할 ‘콜수’와 ‘상품 판매 목표 실적’을 배분했다. 이에 따른 ‘인센티브’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지급을 미뤘다.

홍씨는 “악착같이 일하던 수연이가 언젠가부터 힘이 쭉 빠졌다. 일은 너무 힘든데 월급은 100만원 초반대에서 올라가질 않으니 실망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연이는 자신을 데리러 온 아빠에게 종종 ‘콜수를 못 채웠어’, ‘깜지를 써야 한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고 한다. 저녁 6시 정시 퇴근은 거의 없었고 저녁 7~8시나 돼야 일이 끝났다는 게 홍씨의 기억이다.

영화 &lt;다음 소희&gt;에서 직업계고 졸업을 앞두고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소희의 모습.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다음 소희>에서 직업계고 졸업을 앞두고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소희의 모습.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딸이 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던 수연이는 여느 사춘기 소녀와 비슷하게 집에서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홍씨는 “죽기 한 달 전부터 고민이 많아 보여 ‘수연아 힘드냐’고 물어봐도 ‘몰라’ 짜증을 내면서 출근하곤 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엘지라는 이름을 믿었다. 하청업체인 줄도 모르고 현장실습협약서에 사인을 해줬다”며 “콜센터라고 하니 전화를 받고 끊는 곳인 줄로만 알았지, 고등학생을 그런 ‘욕받이 부서’에서 일하게 할 줄 알았으면 실습 자체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수연이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꾸려진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해당 고객센터의 평균근속은 0.86년에 불과했고 일할 사람을 소개하면 25만원씩 소개비를 지급할 정도였다. 홍씨는 “실습생이기 때문에, 싼 임금으로 가장 힘든 부서에 보낸 것”이라며 “회사가 실습생을 몇개월 동안 써먹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연이 일했던 하청업체 ‘엘비(LB)휴넷’은 2017년 6월에야 홍씨 등 유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하고 대표 명의의 공개사과문을 냈다. 홍씨는 “당연히 수연이의 죽음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감정노동자는 산재 인정을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에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회사와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원청인 엘지유플러스는 지금까지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학교라고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직업계고별로 취업률을 집계하고 교육청에서 이를 학교 평가 지표로 점수화해 예산 배정 등에 활용했기 때문에 학교는 알면서도 학생들을 전공과 상관없는 회사에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서 소희의 담임교사는 “거기서 우리 학교 애들 안 받는다고 하면 어떡할래?”, “네가 후배 앞길까지 막는 거야”라며 힘들어하던 소희를 다시 회사로 돌려보내려 했다.

수연이가 죽은 뒤에야 교육부는 직업계고 학생들이 법령상 의무적으로 했던 현장실습을 ‘선택제’로 바꾸고 직업계고 관련 정책에서 취업률 지표 평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업계고는 여전히 취업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에서 형사 ‘유진’은 소희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임을 직감하고 수사에 나선다. “힘든 일을 하면 더 존중받아야 하는데 더 무시해. 아무도 관심이 없어”라는 유진의 대사는 수연이가 삶의 끝자락에서 느꼈을 무력감을 짐작케 한다. 다만 현실에서는 유진과 같은 형사는 없었다. 수연이의 죽음이 수면 위로 떠오를수 있었던 데는 지역 노동시민단체, 언론 그리고 홍씨 부부의 힘이 컸다. 하지만 수연이가 죽고 10개월 뒤 수연이의 엄마는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로 딸을 따라갔고, 이제 홍씨에겐 아들이 가족의 전부다. “행복했던 가정이 자식을 앞세우고 나니 풍비박산이 됐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현장실습으로는 다음 수연, 민호, 정운이는 100% 나올 수밖에 없다.”

2019년부터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 중인 홍씨는 특히 정치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영화 <다음 소희> 관람이 잇따르고 있지만 홍씨 눈에는 수연이가 죽었을 당시 ‘반짝’했던 관심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홍씨는 “정치인들이 영화만 보지 말고 실습생을 보호할 수 있는 법 개정에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이른바 ‘현장실습 사고 방지법’ 13건이 발의되어 있지만 모두 심의조차 받지 못한 채 교육위원회에 계류중이다. 법이 통과돼야만 학교에서 산업재해 발생 업체 정보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고, 실습 업체의 실습생 부당대우를 금지하고 위반 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실습생도 근로기준법 제7조(강제근로의 금지), 제8조(폭행의 금지), 제76조의2(직장내 괴롭힘의 금지)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다.

영화 ‘다음 소희’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21일 올해 첫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지만 해당 법안들의 안건 순서는 40번대라, 심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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