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시에서 메수트 한제르가 지진으로 무너진 아파트 잔해에 깔린 15살 숨진 딸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왼쪽), 대장동 개발사업에 도움을 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안영춘 | 논설위원
사진은 정적이다. 재난 보도 사진으로는 드문 경우다. 바닷가에서 엎드린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된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의 사진 이후 처음인 듯하다. 튀르키예 대지진의 폐허 한가운데, 무너져 앉은 아버지의 몸가짐과 표정은 가만해 보인다. 그의 왼손이 붙든 또 하나의 창백한 왼손은 잔해 더미에 가린 열다섯살 딸의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간 지 이미 오래임을 일러준다. 사진은 그 하염없는 시간을 순간으로 포착함으로써, 자신의 숨결을 피붙이에게 불어넣을 수 없는 데서 오는 슬픔의 심연이 고요의 바다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 고요함을 품고, 사진의 형상과 구도는 익숙한 이미지를 길어 올린다. 피에타다.
미켈란젤로가 평생에 걸쳐 제작한 마리아와 예수의 <피에타> 4연작과 케테 콜비츠가 자신과 전사한 둘째 아들을 재현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아들 전태일의 영정을 붙들고 있는 이소선 선생의 사진은 죽은 자식을 품은 산 어미의 보편적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보편성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은 자식을 대신해 살아갈 수도 없는 존재가 수락해야만 하는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적인 슬픔이다. 그런 슬픔이 가만한 자세로 포착되는 건 우연일 수 있겠으나, 성과 속의 경계마저 넘어서는 슬픔의 보편성이 자연재해 앞이라고 해서, 또 어미가 아닌 아비 앞이라고 해서 멈춰 서진 않을 터이다.
여기 또 한장의 사진이 있다. 검찰 출신에 전 재선 국회의원인 곽상도가 뇌물죄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 앞에 선 장면이다. 동적이지 않으나, 정적이지도 않다. 그 어정쩡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집약된다. 그 표정은 특유하되, 선천적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 수사팀에 몸담은 검사로서, 강씨가 재심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음이 확인됐을 때도 그는 그저 떨떠름해했다. 그렇다면 그의 떨떠름함은 제 허물을 가리려고 머리만 덤불 속에 처박는 ‘장두노미’(藏頭露尾)식 몸짓이자, 엘리트 기득권층이 곤경에 처했을 때 구사하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다만 이번의 떨떠름함에는 새로운 사정이 추가됐다. 대장동 주역들이 아들에게 준 퇴직금 50억원의 규모가 비상식적일지라도, 이들 부자는 경제공동체가 아닐뿐더러, 아비 보고 준 돈이라는 증거가 없어 무죄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 고차방정식은 뜻밖의 고민을 던진다. 50억원은 개평도 없이 아들에게 귀속돼도 좋은가. 그 50억원에 대한 자신의 기여마저 부정당해도 괜찮은가. 떨떠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재판부의 법리는 이성계와 이방원처럼 권력(돈) 앞에서는 부자유친 따위 안중에도 없는 봉건 세습 권력의 습속과 깊이 닿아 있다. 곽씨 부자로서는 왕조급의 신분상승을 했다. 그의 사진 또한 덩달아 어진급이 아닌가.
튀르키예 아버지의 사진과 곽상도의 사진은 보는 이에게 영원히 닿을 일이 없을 것 같은 파토스적 거리감을 준다. 그러나 둘은 한 가슴속에서 동시에 발현되는 투사 대상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곽상도가 무죄를 선고받던 날, 미용노동자인 큰딸이 마지막 예약 손님을 배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근 음식점에 갔다. 밤 9시였다. 술기운에 기대어 풀어놓는 그날 하루 고단했던 일들을 듣고 있노라니, 내 몸이 하릴없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최저임금 이하의 수련 과정 3년을 거쳐 특수고용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가는 딸에 대한 가만한 연민이 어느덧 50억원과는 너무도 먼 내 경제력에 대한 자책으로 귀환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세습 사회라는 방증은 지체 높은 재벌가의 성채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강남 8학군’이라는 인문지리학적 2부 리그야말로 곽상도가 되지 못한 중간계급 어미·아비의 가장 치열한 세습의 각축장이다. 그 가슴속에서 튀르키예 아버지의 사진은 비극적 정화의 장치로 한시적 쓸모를 다하고, 곽상도의 사진은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규탄하면서도 무의식적인 준거가 되어 일상을 지배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도 한다. 그 각자도생의 끝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집단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까. 너무나 다른 두장의 사진을 나란히 응시하다 보니 문득 두려운 생각이 엄습한다.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