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비밀경찰서의 국내 거점 의혹을 받은 서울의 한 중식당에서 왕하이쥔(44) 대표가 ‘비밀경찰서 진상규명 설명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명윤의 환상타파] 전명윤 I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이제는 모두에게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겠지만, 2019년 세계를 들끓게 했던 홍콩 민주화시위의 발단은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찬통카이라는 홍콩인을 대만으로 범죄인인도 하느냐는 문제에서 촉발됐다.
홍콩은 속지주의 국가라 홍콩 바깥에서 벌어진 형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었다. 따라서 범죄인을 범행을 벌인 나라로 보내야 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라는 법적 지위를 가진 홍콩과 중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대만 사이에는 조약을 체결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이에 홍콩 행정부는 중국과 대만을 포괄하는 범죄인인도에 관한 법률 개정에 나섰고, 홍콩인들이 이에 반대하면서 홍콩 민주화운동이 2019년 주요 국제뉴스를 차지했다. 하지만 결국 이 시위로 인해 중국은 국가보안법을 신설했고, 그 직후의 코로나19 여파 속에 홍콩은 민주화가 아니라 중국화하고 말았다.
지금 이 이야기를 복기하는 이유는 중국이 세계 각국에 비밀경찰서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는 뉴스 때문이다. 다시 2019년으로 돌아가 보자. 찬통카이 사건으로 인한 송환법 개정은 사법정의 구현이라는 면에서 방향성은 맞았다.
문제는 당시 홍콩 행정부가 만든 송환법이 원안대로 처리될 경우 수많은 홍콩인이 중국에 송환될 수 있었다. 중국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징역형에 불과한 일에도 사형을 선고하고, 실제 집행하기도 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사형집행 국가다. 인권단체마다 다르지만 대략 기천의 사람이 매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고 한다. 그런 중국과 범죄인인도 협정을 맺으려는 나라는 없다. 범죄인인도 협정은 기본적으로 협정 당사국간 범죄에 대한 형량이 엇비슷할 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인도국에서 징역형에 불과한 범죄에 인수국에서는 사형 선고가 가능한데, 특히 사형제 폐지국가라면 중국과 어떻게 범죄인인도 협정을 맺을 수 있겠나.
게다가 독재국가들은 그들의 최고지도자를 비판하는 행위에 무척 민감하다. 2015년 홍콩에서 발생한 코즈웨이베이 서점 관계자 납치사건도 시진핑의 사생활을 폭로하려는 책 출간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납치극은 꽤 국제적이어서 한 서점 관계자는 타이 파타야에서 납치되기도 했다. 누가 납치를 실행했는지는 아직 수수께끼인데,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설치됐다는 의혹을 받는 비밀경찰서의 존재는 이 문제와 관련해 적지 않은 힌트를 준다.
요즘 중국은 외국인에 의해, 혹은 자국인이 해외에서 벌인 국가음해 등 사건을 중국 법원이 재판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2020년 신설된 홍콩 국가보안법이 대표적인데, 이 법은 홍콩뿐 아니라 중국의 안보에 위해가 되는 광범위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2022년에 신설된 ‘온라인 사기방지법’에서는 아예 대놓고 전 세계 모든 중국인에 대한 치외법권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당장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홍콩인 이민자 그룹은 발칵 뒤집어졌다.
선례가 만들어졌으니 다른 법률도 따라할 것이고, 만약 해외에서 안하무인 격으로 법 집행을 시도하겠다고 나서지 않겠냐는 거다. 2015년 코즈웨이베이 서점 관계자 납치 사건 때 영국 국적 리보 같은 외국인이 납치됐는데, 당시 중국 당국은 ‘리보가 영국 국적자일지는 모르나 혈연적으로 중국인’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1970년대 말쯤이었나? 한국에서도 당시의 국가지도자를 비판하고 사생활을 폭로한 한 전직 정보기관장이 실종됐다. 그에 앞서 유력한 야당 지도자가 일본에서 납치되기도 했다. 딱 이 정도 수준의 일을 2023년의 중국은 꿈꾸고 있다. 그 시절 한국이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제3세계의 한 나라였으나, 지금의 중국은 미국과 겨루는 최강대국이다. 중국이 선도국이 되는 것에 많은 사람이 문제제기하는 이유고, 중국 비밀경찰서 의혹이 가볍게 잊혀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